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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May 19. 2020

제주에서 다시 만난 페르시아 왕자

시간을 날아

아이들에게도 닿아 있었다

작년 봄, 제주 여행을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을 위해 넥* 컴퓨터 박물관을 들렀다.

남편과 내가 어릴 적 신나게 했던 갤러그, 스트리트 파이터, 테트리스부터 아들이 좋아하는 카트라이더 그리고 VR 최신 게임까지 컴퓨터 발달에 따른 게임의 연대기가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요즈음의 현란한 게임에 익숙한 아들은 갤러그가 뭐가 재밌냐며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남편과 나는 빨간 버튼과 스틱에 손가락을 싣고 입으로는 자신들의 오락실 출입기를 이야기 하며 신나 했다.

그렇게 추억에 젖어 둘러보던 중 한 오래된 델(Dell)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꽂혔다.

 

Prince of Persia (박물관에서 살고 있었다)


'Prince of Persia'.

한 시간 내에 공주를 구하지 못하면 죽고 마는 도스용 게임이다. 눈과 손가락이 게임 속 페르시아 왕자로 둔갑하여 적들과 싸우고 암호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아낸 암호를 입력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또다시 못된 적들을 무찌르고 가시밭 길이 놓인 고급 단계들을 거쳐서야 비로소 공주를 구출할 수 있는 게임이다.
와 몇 만년만의 조우냐! 네가 제주에서 박물관 신세를 지고 있을 줄이야.


90년대 초 우리 집 최초 컴퓨터는 (그 당시 대형 컴퓨터 매장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지금은 없어진)세진 컴퓨터 랜드에서 구매한 삼* 컴퓨터였다. 부모님의 기대에 늘 맞섰던 선구자이자 동생들을 신세계로 인도하던 오빠로 인해 오락실 아닌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페르시아 왕자의 고된 여정들, 그 단계마다 오빠가 (미팅 펑크 날 때마다) 열심히 싸워 암호를 찾아내 나와 남동생에게 건네주면, 우리는 오빠가 뚫어 놓은 그 길을 쉽고도 빠르게 진입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곤 했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는(언니는 시집가고 없었구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공주를 구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신기하게도 나도 모르는 사이 '페르시아의 왕자'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닿아 있었다.

 '더 클래식'의 노래 '마법의 성'모티브가 이 게임이란다. 첫째와 둘째가 일곱 살 차이가 나는데도 두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자장가는 똑같다. '들장미 소녀 캔디', '얼굴', '섬집 아이' 그리고 '마법의 성'. 

불을 끄고 누워 내가 "자유롭게~ " 선창을 하면 아이들이 따라 부르다 스르르 잠들던.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에 수많은 어려움뿐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 거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 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혜 달라고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여
이제 나의 손을 잡아보아요
우리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죠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 라면

더 클래식 <마법의 성>


중학교 교복을 어색하게 입고 학교를 가야 할 아들이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혀 엄마의 비위를 맞춰가며 게임을 간간이 하고 있다. 너무 과한 눈치는 주지 말아야겠다.

 '카트라이더'와 함께 했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먼 훗날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 노래로 다시 태어나 아들의 아이들이 만날 수도 있으니.


나와 페르시아의 왕자처럼.


이렇게 우리는 추억이라는 시간의 마법으로 연결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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