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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May 15. 2020

내 주제에 마로니 인형이라니

은주야, 잘 있니?

너의 인형은 나의 슬픈 꿈

사진은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성극을 한 후 찍은 기념사진이다. 앞줄은 나를 포함하여 초등학교 저학년들이고(은주도 보인다) 뒷줄은 언니 오빠들이다. 동네의 작은 교회라 웬만하면 출석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매 행사 때마다 성극이나 성가를 준비하고 발표하곤 했다.


어느 해 성탄절 전야, 저학년들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실로폰으로 연주하기로 했다. 연습 때는 평상복을 입었지만 공연 당일에는 드레스 같은 것을 입고 와야 했다. 그러나 옷장을 아무리 뒤져도 드레스는커녕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원피스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같이 공연하는 은주에게서 검은색의 빌로드(벨벳) 원피스를 빌려 입어야 했다. 윤기 나고 예쁘긴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도 내가 평상시 입고 다니던 노랑 스웨터가 더 예쁘다고 했다. 그래서 나름 예쁜 바지 위에 그 노랑 스웨터를 입고 갔는데 전도사님이 안된다고 하셨다. 다시 집으로 가서 은주의 검은색 빌로드 원피스로 갈아 입고 교회로 갔다. 

우리 오빠는 성극에서 요셉 역을 맡았다. 마리아 역의 언니도 정말 예뻤다. 그나마 오빠가 성극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 내 자존심이 조금 살아났다.


나는 주일학교 아침 예배와 오후 예배를 성실히 드렸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헌금은 아마 20~30원 정도 냈을 것이다. 그 돈으로 구멍가게에 가서 맛있는 라면땅을 사 먹고 싶기도 했지만 꾹 참았다. 연말이 되면 성실한(예배 빠지지 않고 헌금도 잘 낸) 아이들에게 목사님께서 상을 주셨다. 난 단연코 성실한 아이였으므로 은근 1등 상을 기대했다. 그런데 은주가 받았다. 헌금을 백 원씩 냈단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는 날씬하고 세련된 마로니 인형(바비 인형 같은 것)이 인기였다. 나에게는 아빠가 어디서 구해다 주신 콩순이 같이 통통한 아기 인형과 헝겊으로 된 회색 쥐 봉제 인형이 하나 있었다. 은주가 콩순이 인형이 예쁘다며 옷이 너덜한 마로니 인형과 바꾸자고 했다. 그래? 속으로는 웬 떡이냐 하면서도 망설이는 듯 시치미를 떼고 콩순이를 주고 마로니 인형을 받았다. 붕 뜬 내 마음은 너울렁거렸다. 이 공주 같은 인형을 드디어 갖게 되다니, 꿈이야 생시야!

은주가 콩순이 인형을 데리고 사라지자 나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마로니 인형을 품에 꼭 안고 한달음에 집으로 왔다.


나보다 6살 많은 언니는 찢어진 내 입을 보더니 인형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사춘기였던 언니는 가족들에게 다정한 편이 아니었다. 그늘이 있었고 새침하고 날카로워 엄마와 종종 다투었다. 그런 언니가 웬일로 나를 위해 손이 많이 가는 인형 옷을 만들어 준다니 나는 두배로 설레었다.

언니가 집에 있던 검정 천으로 긴 시간 끝에 만든 인형 옷은 어깨끈이 달린 긴 원피스였다. 그 옷을 입은 마로니 인형은 우아한 영화 주인공 같았다. 정말 예뻐서 은주에게도 자랑했다. 은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며칠 뒤 이 녀석이 인형을 다시 바꾸자고 다. 엄마한테 혼났다고.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마로니 인형이라니. '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마로니 인형을 은주에게 주어야 했다.

"야, 검은 원피스는 우리 언니가 만들어준 거니까 그건 내놔라" 내가 퉁퉁거리면서 말했다.

"너는 이제 그 옷을 입힐 인형이 없잖아? 콩순이는 너무 뚱뚱하고. 그러니까 그냥 나 줘." 은주가 얄밉게 말했다.

집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에게 마로니 인형은 '꿈'같은 것이었고 그 시절 나의 작은 꿈들은 번번이 내게로 오지 않았으니까. 난 통통한 콩순이 몸통을 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언니가 "마로니 인형은?" 하며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언니한테 달려가 그 품에서 엉엉 울었다.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고 이제는 중년 여인이 되어있는 두 사람을 생각한다.


은주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내가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가졌던 너. 나를, 원피스를, 그 인형들을 기억할까? 나의 울음은 알기나 했을까?


가난한 공무원의 맏딸이었던 우리 언니는 중학교 시절부터 '상업고에 들어가 집안 살림에 보태야 한다'는 말을 부모님께로부터 들어왔다.

나의 꿈이래야 예쁜 인형과 라면땅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구멍가게 주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언니는 그 나이에 누구나 그렇듯 멋진 여대생을 꿈꾸었을 텐데.


언니가 여상을 거쳐 취직하여 돈을 벌면서부터 우리 집의 살림살이는 점점 나아졌고, 나의 꿈들도 내게로 오기 시작했다.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꿈꾸기를 포기했던 언니. 그러한 언니의 슬픔이, 마로니 인형을 끝내 갖지 못했던 아이를 소환하면서 눈에서 흐르고 있다.


"은주야, 알고 있었니? 너의 인형은 나의 슬픈 꿈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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