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말은 오래 남는다. 말에도 그림자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머리를 곱게 기른, 소녀 같은 선생님이 계셨다. 푸르렀던 날씨였던가, 그날 그분은 나에게 말했다.
“사람의 귀에는 새소리가 들려야 해요. 아스팔트의 반짝임이 보여야 하고요.”
그날 이후, 나는 아침이면 귀에 스미는 새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아스팔트를 밟을 땐 햇빛 아래 작은 알갱이가 반짝이는 풍경을 눈에 담으려 했다. 어쩌면 그 말은,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 느껴도 좋다는, 그런 뜻이었을지 모른다.
선생님은 그 외에도 많은 말들을 해주셨다. 나의 눈이 맑고 빛나더라고, 깨끗한 돌 같은 사람이라며 내게 원물의 이미지를 빗대어 표현해주시기도 했다. 그 말들 역시 내 안 어딘가,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어느 날은, 선생님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창밖으로 무지개가 떴고, 그 아래로 예쁜 구름이 둥실둥실 흘렀다. 선생님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무지개를 가리키며 참 예쁘다고 하셨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불쑥 솟았다. 슬프지도 않았고, 아, 참 예쁘네, 선생님도 기분이 좋으시구나—그렇게 생각했을 뿐인데,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호흡이 가빠졌다. 한참을 헉헉대며, 눈물을 훔치고, 다시 숨을 고르기를 반복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공황장애도 없었고, 우울증과도 거리가 먼 나였는데.
그때에도 선생님은 전혀 당황하지 않으셨다. 조용히, 내 손에 귤 하나를 쥐여주시며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고 그 말은 아직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로 남아있다.
“온기가 있는 걸 손에 쥐고 있으면 좀 나아질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그 귤은, 할머니가 내가 놀러 갈 때 선생님과 함께 나눠 먹으라며 꼭 쥐여주시던 것이었다. 그 시간이 오후 3시 40분쯤이었다는 게 또렷이 기억난다.
나중에 할머니께 이런 일이 있었다며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시간에 성모 마리아상을 닦고 계셨다고 했다. 정성스레, 마음을 담아 닦고 있었다고. 아마 그 온기가, 나를 살렸던 것 같다. 따뜻한 마음이 나비처럼 날아와, 내 안을 정결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아마 수면아래의 것들이 들끓어 올라온 탓이었겠지. 그 후로 몸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졌으니.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 내 곁에서 이런 류의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위로해 줘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