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기대야 할지 모른겠다면 정답은 '책'
첫 아이를 낳고 맞이한 내 인생의 대혼란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험의 생경함과 당혹스러움은 정신적으로 날 피폐하게 만들었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고단함을 선사했다. 너무나 예쁜 아이를 보면 그런 어려움은 상쇄되지 않나요? 라고 묻는다면 그것과는 별개라고 답하고 싶다. 나와 떨어져 나온 누군가를 위해 온종일 나를 내려놓는 하루의 풍경은 행복함, 안온함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첫 아이는 알러지 체질로 피부는 울긋불긋하고 거칠었고, 제한해야 하는 음식들은 많았기 때문에 눈물로 보낸 시간들이 참 많았다.
하루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아이의 낮잠 시간. 아이의 물건과 놀이 흔적으로 어질러진 집을 대충이라도 정돈하고 나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이 선물같이 찾아 온다. 그 시간 동안 고요한 집 안에서 나를 위로해 준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나와 아이로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일정 시간을 견뎌야 했던 나에게 책은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었고, 다른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과 위로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물론 재미도 함께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복직을 한 후 둘째가 '쌍둥이'로 찾아왔다. 하나가 아닌 두명의 아기가 올망졸망하게 같이 있는 것만 봐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지만,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은 부족하다 못해 소멸될 지경이었다. 육아에 내 자신이 묻혀 버릴 것만 같은 시간들이 찾아오자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대작전에 나섰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었고, 나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리고 엄마인 내가 행복하고 바로 서야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정답은 '책'이었다. 아이가 달콤한 낮잠을 청할 때, 나는 책상에 앉아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어두운 밤에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정된 세계 속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만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을 하나 둘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이는 글들을 가끔 꺼내어 보며 나의 세계를 확장했고, 새로운 세계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안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배움의 시간, 즐거움의 시간, 치유의 시간이었다.
일상에 지쳐 아이와 함께 잠들어 버리면 내가 놓친 오롯한 밤의 시간이 얼마나 아쉬운지. 내가 만난 세계들을 엮어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다.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들, 그리고 내 아이가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들. 그 책들이 선물처럼 그들에게 다가가 마음에 다다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