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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Sep 27. 2021

엄마의 독서와 아이의 책 읽기

 가끔 아이와 함께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을 대여하고 카페에 가곤 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음료수와 케이크를 주문해 주고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나대로 읽고 있던 책을 펼쳐 들고, 아이는 기대에 부풀어 도서관에서 갓 빌려 온 '신상' 책을 펼쳐 들고 책에 빠져 든다. 일곱 살 아들과 카페에 마주 앉아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 주고 잠깐의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고유한 세계에 침잠하는 것.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여러 가지 책을 읽어 주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가끔 나도 내 책을 옆에서 읽고는 했다. 아이가 셋이 된 지금, 그렇게 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종종 이렇게 했다. 읽기 독립이 되지 않았더라면 세이펜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보고, 꼭 줄글이 아니더라도 그림책의 매력적인 그림들로 나름의 서사를 구성해보는 것도 나름의 '책 읽기'이다. 아이는 자신만의 '책 읽기'를 하다가 엄마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엄마와 자신이 '읽기'라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엄마가 스스로가 책이 재미있어서, 좋아서 그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큰 감화가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을 식탁과 화장대와 같이 손이 잘 닿는 곳에 놓아 두는 편이다. 아이의 책이 넘쳐나는 우리집이지만, 엄마 또한 책을 정말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읽는다는 것을 일깨워 줄 것 같다. 반드시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유도하려 하기보다는 내가 언제든 집어들기 편한 것에 놓은 것이지만, 부차적 효과가 크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맞을 것 같다. 


어릴 때의 경험을 잠시 떠올려 본다. 부모님께서 구입하셨을 두껍고 낡은 문학 전집들을 호기심에 꺼내어 읽어본 적이 있다. 글자가 작고 가끔 한자까지 있어서 가독성이 좋지도 않고 어린 눈에 매력도 떨어졌던 그 책들의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 점점 책 속의 세계에 빠져서 읽었던 기억. '소공녀'라는 작품이 그랬고, 훨씬 더 커서는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도 아빠의 빛 바랜 책으로 읽었다.  부모님의 책장에 꽂혀 있는 빚바랜 책들은 부모님도 이 책을 읽으셨을 것이라는 모종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고 친밀감을 형성해 주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책과 나의. 


내 아이에게도 그런 순간을 주고 싶다. 엄마의 독서와 아이의 책 읽기가 만나는 순간을. 두 가지가 다르지 않으며, 서로의 읽기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깨달았으면 좋겠다. "엄마, 엄마는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서 빗소리 들으면서 책 읽는 게 제일 좋지?"라고 말하는 일곱 살 아들의 내면이 책으로 다져져서 조금 더 커지고 풍성해질 쯤, 그때는 같은 책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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