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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Sep 17. 2021

국어 교사 엄마의 어설픈 책 육아

책으로 성장하는 아이와 나의 희망 나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는 고민에 빠진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지? 이 막연한 물음에 내가 찾은 하나의 답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러 가지 책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세계의 모습을 접하듯, 아이도 그런 경험을 했으면 했다. 그리고 넓은 간접 경험과 사고의 폭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이해력과 마음을 가지길 바랐다.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이해력, 그리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감수성인 마음의 영역까지 책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가 책을 스스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책을 통한 긍정적 경험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의 무릎 위에서 안겨 책을 읽는 오롯하고 따뜻한 순간의 경험은 그 책의 내용을 떠나 아이에게 있어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기에 무릎을 기꺼이 내 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비록 책을 읽어 주지만 아이에게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몫은 아이에게 넘겨 주었고, 책을 읽은 후에도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왔을 때는 아무리 바쁠 때라도 만사를 제쳐놓고 책을 읽어 주곤 했다. 같이 읽고, 같이 느끼고, 같이 울고 웃는 그 시간은 아이가 책을 통해 점점 자라는 시간이었다.

  책 육아의 극적인 효과는 아이가 문자를 스스로 인식한 것이었다. 다섯 살 여름이었나, 어느 날 택배 상자에 있는 글씨를 스스로 읽어나가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는 엄마와 책을 읽는 경험 속에서 책에 쓰여 있는 글자와 엄마가 들려 주는 소리를 연결 지으며 글자를 익히고 있던 것이었다. 이른 문자 학습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문자 학습에 대해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아이가 내적 호기심을 발휘해 터득한 문자에 대해서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아이의 독서를 넓고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곱 살이 된 지금. 아이는 제법 긴 글밥의 책들을 혼자 읽고 내가 예전에 책을 읽어주고 옆에 탑을 쌓아놓은 것처럼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동생들의 요란한 싸움과 투정, 놀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을 때는 자신만의 고요한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다. 심심할 때 책을 찾아 읽고, 책에서 세계를 배우는 아이.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 조기교육을 받아 원어민처럼 말하지는 못해도, 어려운 수학 연산을 줄줄 해내지 못해도 아이에게는 글을 읽어나가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년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내가 크게 두렵지 않은 것은 그 힘을 믿기 때문이리라.

  그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한 가지 마음은 일단 절반 정도 성공은 거둔 것 같다. 아이는 알고 있을까? 책 속에는 더 많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끔 자기의 '그리스로마신화' 책을 꺼내어 엄마의 '그리스로마신화' 책과 비교해 보며 같은 그림을 발견해 냈을 때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만나게 될 더 깊고 넓은 책 속의 세계에 대해 기대하게 된다. 그림책에 간략하게 그려져 있던 세계가 나중에는 더 깊어지고 확장될 것이고, 아이는 크면서 길러온 '그 힘'으로 세계를 이해할 것이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한 가지 생각만으로 달려 온 나의 어설픈 책 육아. 아이에게 그래도 작은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한 가지 선물을 더 주고 싶다면 내가 읽어 온 책의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는데, 어떤 책을 읽는가도 무척 중요하다. 책은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과는 달리 더 많은 시간과 생각하는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번 잘못 고른 책을 중간쯤 읽고 책장을 덮다 보면 내가 허비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웠던 적이 많다. 아이에게 엄마가 책을 통해 만난 세계를 전해 주고 싶다. 나는 오늘도 한 권의 책을 고르고, 읽으며, 책 속의 이야기를 언젠간 만나게 될 내 아이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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