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마음을 털고, 인생이라는 집안을 정돈하기 시작하며
“인생 참 막막하다..."
서른 셋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문득 살림을 하다가 — 내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무 살 이후, 참 열심히 살아왔다.
꿈을 향해 나를 성장시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공부하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모든 순간을 움직인 동력은 ‘열정’이었다.
그런데 서른 셋이 된 지금,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됐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걸까?’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머릿속은 여전히 바쁜데,
마음 한구석이 멈춰 서 있는 듯한 느낌.
삶은 흘러가는데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를 되묻고 있었다.
예전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흘려들었다.
정말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숫자만으로도 기회의 문이 닫히는 경험을 하게 됐다.
신입이 아니게 된 나는
내 역량보다 앞선 자리에 앉게 되었고,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돌아보면
공무원 시험을 봤더라면,
전공을 바꿨더라면,
누군가의 권유를 따랐더라면…
‘그때 할걸’ 리스트가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후회가 많은 시기는 처음이었다.
열심히 살아왔기에 후회는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의 나를 마주할수록
헛헛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은 유독,
과거의 꿈이 자주 떠오른다.
그 시절 조금 더 애썼더라면,
조금 더 믿어줬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후회인지 미련인지 모를 감정이,
종종 마음에 오래 머문다.
내 옆 자리, 40대 후반 차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대리님, 서른셋? 다 할 수 있어.
그 나이면 뭐든 가능해요.”
그 말이 고맙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믿고 뛰진 않는다.
이전보다 조금 더 묻고
조금 더 기다리며,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에서 밀린 설거지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도 지금 이 접시들처럼 엉켜 있구나.
하나씩 씻고 닦다 보면, 언젠가 정리되겠지.'
그 순간,
인생도 살림살이와 참 많이 닮아있다는 걸 느꼈다.
청소기처럼 마음도 빨아들여야 하고,
빨래처럼 탈탈 털고 햇볕에 널어야 잘 마른다.
냉장고처럼
마음속 유통기한 지난 감정들도
하나씩 꺼내 정리해야 한다.
주방은 커리어를 실험하는 나의 실험실이었고,
옷장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흔적을 보여줬다.
살림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삶을 유지하는 가장 사적인 철학이었다.
그리고 그 철학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내가 내 방식대로, 내 속도로 깨달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인생이라는 집 안에서
하나씩,
내 살림을 정리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