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목적이 영어 학습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 손에 모든 선택권을 맡기고 엄마, 아빠의 휴식 수단으로 영상 시청을 활용하는 것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하고, 영상 시청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시며 휴식을 취하시길 권한다. 아이가 영어 영상에 흥미를 갖고 봐주기만 한다면, 엄빠표 영어의 절반은 사실상 성공이다.
01. 영상 노출은 영어로만
사실, 이 이야기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부모에 따라 추구하는 교육 방향이 있고, 아이들 정서와 수준에 맞는 다양한 한글 영상 자료들이 많이 출시되어 있어 교육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 영상 대신 한글로 된 영상을 보겠다고 하는 아이와 매일매일 밀당을 하고 싶지 않다면, 영상 노출은 영어로만 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영어 영상 시청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엄빠표 영어의 핵심 관건인데 매일매일 영상 시청을 한글로 하니, 영어로 하니 하는 문제로 언쟁이 벌어지면 부모도 아이도 에너지 소비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경우, 만화는 무조건 영어로만 나오는 집인 것처럼 콘셉트를 정해두고 모든 만화를 영어로만 틀었다. 유튜브에서도 마찬가지고, 넷플릭스 시청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6세가 된 지금도 영상 시청은 영어 만화 시청을 의미하기 때문에 큰 논쟁 없이 영어 영상에 노출하고 있다. 양질의 한글로 된 교육 영상들은 독서로 그 기능을 대신하고, 영상 노출은 영어로만 시키는 것이 아이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영어 노출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02. 정해진 시간만 시청
모든 영상 시청에는 정해진 시간만 시청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흡수력이 빨라 못 알아들어도 화면에 집중하는 능력이 어른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시청하게 두면, 중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처음 영상을 시청할 때부터 정해진 시간을 두고 시청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영어 영상을 좋아하고 잘 본다고 해도 하루 2시간 이상의 시청은 자제하기를 권한다. 영어 영상 시청 말고도 다른 활동을 통한 아이의 성장도 필요하고, 뇌 발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루 10-20분 정도의 짧은 노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제2외국어 환경에서 영어를 습득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경우, 언어 입력(input)이 이루어지는 활동이 주로 영어 영상 시청과 독서인데 10-20분은 충분한 입력이 이루어지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최소 30분 이상, 최대 2시간 이하를 권장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 영어 영상 시청 시간 조절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남은 시간을 표시해 주는 타이머이다.
03. 시청 매체는 부모가 통제 가능한 수단을 활용
요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매체는 컴퓨터, 태블릿, 휴대폰, TV 등 다양하다. 처음 영상을 접할 두 돌 즈음에는 어떤 매체라도 부모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하며, 직관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걸 빠르게 습득한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의도하지 않았던 자료도 아이가 스스로 골라 보고 싶어 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 그렇다면, 아이의 시청을 부모가 가이드하기 쉬운 매체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의 경우, 크롬 캐스트(구글에서 만든 멀티미디어 스트리밍 어댑터, 오디오나 비디오 자료를 와이파이를 통해 TV로 전송하는 장치)를 활용하여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영상 자료를 시청하도록 하고 있다. 유튜브에도 무궁무진한 자료들이 있지만, 연령 제한을 판단하기 쉽지 않고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너무 넓다. 요즘은 어린이 TV 플랫폼도 다양하게 출시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느 매체를 활용하든지 간에 부모가 가이드 하기에 수월한 매체였으면 하는 것이다.
04. 아이 인지 수준에 맞는 영상을 선택
어릴 적, 우리 엄마께서 나와 동생의 영어 학습을 위해 디즈니 만화 비디오 세트를 구입해오신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6학년쯤이었던 것 같고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동생은 유치원생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 정규 교육과정의 영어 교육은 중학교 때 시작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금처럼 열심히 영어교육을 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름 교육에 열의가 있던 우리 엄마는 어딘가에서 영어 영상을 매일 보면 영어 실력이 저절로 향상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디즈니 비디오를 구입해 오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디즈니 비디오에 나오는 영상 내용이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의 흥미를 끌만큼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말 너무 재미가 없어서 볼 수가 없었다. 이건 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의 취향과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 당시에 엄마가 차라리 하이틴 미국 드라마 같은 비디오를 구해오셨으면, 나에게는 영어학습의 큰 전환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미국 드라마 덕후이기 때문이다. 후의 영어 학습에도 미국 드라마가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반면, 내 동생은 언젠가 엄마가 또 구해오신 토이스토리 영어 만화를 정말 수십, 수백 번 보았다. 지금도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개봉하면 극장에 간다. 이렇듯, 영어 영상 노출에도 절대적인 것이 우리 아이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잘 보고, 오래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소문난 기차 마니아인데, 영상도 기차나 중장비가 나오는 것들을 잘 보는 편이다. 아이가 평소에 자주 보는 책, 자주 갖고 노는 장난감 등을 살펴보고 아이의 취향을 파악한 후, 취향에 맞는 영상을 보여줄 것을 추천한다. 또, 아이의 연령에 전혀 맞지 않는데 영어 수준이 그 정도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서 너무 수준 낮은 만화를 보여주는 것은 아이의 흥미를 끌기에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영상 노출은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아이의 인지 수준에 맞는 내용으로 해줄 것을 추천한다.
05. 영어권 국가에서 제작한 영상을 활용
현재, 영어는 약 60여 주권국에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인구의 대다수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들은 영국을 비롯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퀘벡 제외),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 6개국을 일컫는다.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어린 시절 다양한 국가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있는데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경우, 우리나라 교육과정상의 영어 학습에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잘 적응하는 것 같다. 다만, 뉴질랜드, 오스트 레이 일리아에서 살다 온 경우, 발음이 달라 영어 읽기나 말하기에서 눈에 띄게 다른 발음을 구사해 아이들이 흥미 있어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읽기 자료를 잘 이해하고, 쓰기에도 문제없이 잘 적응하는 편이다.
영어 영상 선택에 있어서도 앞서 언급했던 영어권 국가에서 제작한 영상을 보여주기를 추천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어 영상을 고르다 보면 타요나 뽀로로 같은 우리나라 만화가 영어 음성과 자막으로 번역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 다른 번역이 그렇듯 꽤 훌륭한 번역이 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말이 잘 번역된 경우에 불과하다. 실제 영어권 국가의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영어식 표현은 아닌 경우가 많다. 정확하게 번역하다 보니, 문장 길이도 길어지기도 한다. 처음 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실제 영어권 국가의 어린이들이 사용할 만한 수준의 자연스러운 영어로 이루어진 영어 영상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어렵지 않은 영어 표현으로 자연스러운 일상 표현을 익힐 수 있다. 또한, 영어독서를 할 때 필요한 해당 국가만의 문화적인 배경지식도 영상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영어 영상을 보여줄 경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의 어른들이나 아이들이 영어를 매개로 콘텐츠를 제작한 경우들이 있는데 처음 언어 습득의 단계인 만큼 좀 더 정확한 표현과 발음을 구사하는 영어권 국가에서 제작된 영상을 보여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