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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Aug 26. 2016

착각

- 황경신

평생 내가 할 일은 이거라고 생각했는데
저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요즘.

돌아보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착각을 했지.

언젠가 화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도
나는 유화 쪽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데셍과 판화가 좋았어.

재즈 피아노를 배우면 좋을 것 같았는데
곧 시들해지고 결국 클래식으로 돌아왔지.

슈만 탄생 200주년을 맞아
라디오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슈만을 들으며
아아 난 왜 슈만은 별로라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움직이는데
그런 생각을 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했던 것들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했던 것들
변하고 사라지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

평생 싫어할 것 같았던 분홍색을 어느 날 용서하게 된다거나
평생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무서운 영화를 어느 날 보게 된다거나

이 사람 아니면 다시는 사랑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사람 스르르 잊게 된다거나.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을 스르르 밀어내게 된다거나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홀가분해지는 일.
아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훌훌 털어지는 일.

아주 오래 갈 줄 알았던 친구와 문득 소원해지는 일.
아주 잊은 줄 알았던 친구와 문득 다시 만나게 되는 일.

결코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아파트에서 살게 되는 일.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요리를 만들게 되는 일.

다 내버려두었는데
많은 것이 변해가고 있어.

부정하지 않겠어요.
후회하지 않겠어요.


P.S :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이젠 그냥 작은 하늘과
작은 파란 것들만 있어도
괜찮다 싶어.
이 생은 그냥 이렇게 흘러가다 멈춰도 좋겠다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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