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선택할 때, 전공을 고를 때, 회사를 옮길 때, 여자를 만날 때면 늘 봉착하는 문제가 있다. 기회비용의 문제.
더 좋은 대학, 취업 잘 되는 전공, 월급과 복리후생이 좋은 직장, 조금이라도 경제적 상황이 좋은 여자...내가 가진 밑천에서 최대공약수를 찾느라 고민하며 낭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다.
내 경우는 대학과 전공까지는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하였다. 직장은 예상보다 좋지 못한 곳에서 시작하였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허나 그 직장을 옮기고, 거기서 또 옮겨 현재 내가 다니는 직장은 횟수로는 다섯 번째이다. 더 좋은 조건을 찾기는 했지만 찾을 수 없었기에 대신 나에게 맞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옮겨 왔다. 물론 그에 반비례해서 월급 등의 조건은 상대적으로 안좋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 생활에 대한 불만은 적어 괜찮다.
출퇴근 길에는 현실의 차가움에 식어 회사를 옮길 때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이렇게 쉽게 꺼져버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감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좀 있다 생각해보면 나를 지켜주던 직장이라는 방패막이 나를 옥죄던 족쇄였음에 그만 둔 것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없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이전의 잘못된 선택에 의한 손해라고 생각될 때, 이 생각을 해 본다.
'과연 그것이 온전히 나의 것이었을까?'
그러면 현실을 벗어나려는 나의 이성이 현재의 살아숨쉬는 나라는 그릇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 그렇게 다시 지금 이 모습, 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