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책을 공부하는 것과 백과사전을 읽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대학시절 내가 공부할 때 나는 분명 겉돌고 있었고 내가 공부하는 과목에 젖어들지 못하였다. 나의 집중은 이마 앞에만 맴돌 뿐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버렸다.
대학 시절 내가 공부를 못했던 것은 머무를 곳이 없어서도 도와줄 친구가 없어서도 비싼 등록금이나 바쁜 사회생활 때문도 아니었다. 집중해야할 나의 정신이 뿌리내려 머무른 곳이 다름아닌 '자아'였기 때문이다. 자아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치를 정의하고 그 위에 지식과 경험을 쌓으려하였다. 그러다 추상적이고 애매하고 좀 멀리갔다 싶을 때마다 다시 내 자아로 돌아오기만 반복하였다. 결국 나는 20대의 자아라는 섬에서 한 발치도 나가지 않으면서 그 좁은 섬에 세상을 돌아다니는 온갖 잡것들만 쌓다 20대를 끝내버렸다.
사실 당시 내가 취해야 했던 행동은 인생은 혼자산다는 말을 오해하여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자극들,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것들 모두 포함한 그 모든 것들에 두들겨맞고 쓰러져 되새김질하는 넘어짐이었다. 무시받지 않으려, 비웃음당하지 않으려 제자리에 무표정하게 꽂꽂히 서있는 것에 몰두하여 나는 바깥 세상의 많은 것들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나를 계속 제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것과의 결별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자기부정, 무언가에 취하기 등의 수술적 요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나는 어딘가에 매달려 아직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을 흔한 사회적 상황이나 내면적 특성을 핑계로 얘기하며 회피하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 다음 과정을 머릿속의 상상의 영역에 맡겨 인생을 절반정도 간접체험하고 있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헛되이 움직이면 낭비라는 미명아래, 아집과 오기가 내 몸을 운전하며 구름 속 어딘가를 떠가고 있다.
다가가는 것보다 다가와주길 기다렸고, 체험하기보다 체감하길 원했고, 알아보기보다 알게되길 바랬고, 묻고 답하기보다 혼자 생각하고 결론내리던 관조적인 나. 그렇기에 나이 서른 중반을 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자아는 육체와 현실을 넘어 머리 위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