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재밌는 습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 눈치보기.
다니는 회사가 스타트업 회사가 그런지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일이 별로 없다. 잘못하면 회사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신경써야할 것은 상사의 심경이 아닌 회사 그 자체이니가.
그리고 (운이 좋게도) 업무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사장님께서 오더주신 프로젝트는 회사 사정으로 보류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내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해야 하는 처지이다. 때문에 다른 인원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있으면 좋고, 반드시 필요하기도 한 마케팅 업무를 메인으로 하면서 새로운 기획안을 준비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정해진 기간 내에 일정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는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가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스타트업이란 외부 변수에 의해 한번에 회사가 팔려나갈 수도 있고 경쟁사의 출현에 의해 고객들이 일거에 떠나갈수도 있는, 너무나도 불안불안한 곳이니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혹은 더 성장한다 하더라도 내가 회사에 기여한 몫이 적거나 없다면 나에게 기다리는 것은 그에 합당한 처분이다. 그러니 그냥 시간이 지나는 것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일반 기업 직원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마냥 맘 편한 상황은 아닌거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열심히는 해야겠고, 그런데 당장 할 수 있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프로젝트는 없고. 이 가지 축에 의해 양쪽 어깨가 짓눌리니 무언가에 눈치를 보게 되었다. 바로 시간.
나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업무 경험의 정리와 공유.
사업모델과 신규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 기획 및 운영 경험쌓기.
틈새 시간을 이용한 에세이, 일기의 기록.
중기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의 정리, 기획의 구축과 DB의 체계화.
무엇 하나 당당히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기에는 부족하다.
떳떳하지 못하다는 거다.
그래서 무언가에 눈치를 보게 되는데 막상 눈치볼 대상은 없다.
그래서 그 대상을 찾다보니 시간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이 만큼의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해낸 것인가.
이것이 과연 성과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자기반문과 의심을 요새 들어 매일같이 하고 있다.
답은 이미 일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일은 틀림없이 성과이고 내가 가는 방향은 멀리, 크게 보면 맞는다는 것 말이다.
언젠가 '평범함이 쌓여 특별함을 이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특별한 무언가는 남이 얘기해주는 것일 뿐, 당사자로서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초능력을 발휘하여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실적을 내는 일은 단언컨데 결코 없다.
결국 남들이 얘기해주는 특별함이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꾸진히 할수 있는 무언가, 남들이 보기에는 남들에게 설명하기에는 초라해보일 수 있는 무언가를 쭉 하다가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의 레벨에 도달했을 때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들의 입에서 찬탄과 함께 나오는 감탄사 정도에 불과하다.
초라한 과정, 가능성을 빚어가는 인고의 시간을 보고 싶지 않고 모순과 역설의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를 넘나들며 현재까지 이어간 그 연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마디로 정의해버리는 조악한 감탄사. 그게 특별함이라는 것이다.
근데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불안해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제 나이도 있고 내가 속한 사회에 인정도 받고 싶고,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은 욕구가 내 속에서 삭이기엔 너무 커져버려서 그런게 아닐까.
그래서 인내의 힘보다 욕구의 충동이 더 강해져 내 몸과 맘을 뒤흔들며 '오오'하면서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빨리 해내라고.
뭔가 좀 보여보라고.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다고 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몸과 맘이 하나되어 소리없이 절규해본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