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쳐기업 병아리팀장의 생존일지
안정. 그렇게 원하는 안정. 그게 무엇인가. 지금 잠깐 외도를 하여도, 시행착오를 겪어도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는데 아무 지장 없이 지켜줄 수 있는 무언가 인가. 돈이 될 수도 있고 지위가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자기만의 콘텐츠일 수도 있겠지. 그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발버둥을 친다.
90%의 사람들은 자기 용역의 대가로 그것을 얻으려는 루트를 택한다. 가장 위험성이 작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 중 성공한 일부만이 노년이 돼서야 안정을 얻고 산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전까지는 직장과 사회에 시달리는 삶을 겪기 마련이다. 그 안정을 얻기 전까지 그들은 늘 자신을 달래고 설득하며 독한 술과 담배로 악감정과 나쁜 기억을 지워야하고 때로는 미친 듯이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해야 한다. 바로 이 삶 자체가 인생이기에 추하고 더럽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는 아직 인생을 덜 산 사람일 뿐이다.
나머지 10%의 사람들은 더 답이 없다. 그야말로 없는 밑천을 가지고 노회한 세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인터뷰하면 대부분은 막연한 꿈 이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올림픽에 나오는 운동선수나 프로선수 등은 제외하자. 그들은 전자에 해당된다.) ‘자신에게 숨겨진 달란트가 있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운이 없었기 때문이야’라는 심정으로 감히 노회하고 영악한 세상 앞에 당당히 선다. 그것이 곧 자신의 추락과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이 사회의 구조는 대부분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용역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운영된다. 즉 지배층이 재화를 구실로 피지배층의 사회에 대한 노동과 구속을 강제함으로 세상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분열되고 생산라인은 모두 멈춰버리고 말 것이다. 이 시스템의 원칙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내가 어떤 트릭을 써서 지배층 또는 그에 준하는 위치에 올라가는 방법뿐이다. 아니면 피지배층의 위치 중 그나마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위치에 오르기까지 발버둥치는 방법이 있겠다. (후자가 소위 말하는 스펙전쟁이다. 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것도 전자만큼 쉽지 않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비교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들 역시 쫓기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즉 지배층이 될 방법은 전자이다. 내가 어떤 수를 써서 지배층의 위치로 올라가는 것, 사업이나 도박, 또는 장인이 되어 명성을 얻는 것이 그 방법이겠다. 두 번째는 매우 희박하고 그 결말은 대부분 비참했으므로 넘어가자. 첫 번째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실현되기 매우 힘들다. 인력구조나 사회시스템이 신규사업자가 끝까지 완주하기 힘들게 되어 있고, 무엇보다 가시적인 성공가능성이 점쳐지는 분야는 이미 대기업이 확보해놓았기 때문이다. 설령 이 두 가지 장애물을 돌파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은 어떻게든 신생사업자의 사업영역을 자본으로 침식하려 하고, 그도 안 되면 고립시켜 부도 내지 굴욕적인 계약을 맺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을 뚫고 나면 그제야 대기업은 그들에게 인수합병의 당근을 던진다. 이마저도 거절하면 경쟁사에 자본을 대어주어 협력사도 만들어 신생기업을 고사시키고 끝내 그 영역을 차지하고자 한다. 한국은 바로 이 시스템이다. 실리콘벨리와 달리 이곳에서 기업을 판다는 것은 사업에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성공하는 것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세 번째 방법, 장인이 되는 길. 이 루트에는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분명히 인간에게는 특정분야에 대한 무한한 재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지 사회의 눈에서 인식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상수로 둘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재능이 더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높은 성공확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단, 주변 환경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갈린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입학과 대기업입사가 가치 1순위인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의 존재는 인정받기 힘들다. 그 길을 택한다고 한다면 주변의 수많은 유혹과 억압을 뚫고 이겨나가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사람은 방향을 잃고 좌초되고 만다. 설령 고집과 뚝심으로 그 고난을 뚫고 나온다 하더라도 열악한 인프라가 당신의 성공을 방해한다. 도움 받을 수 있는 곳도 없고, 교류할 친구도 매우 적다. 몇 군데 안 되는 곳은 수입이 없는 당신에게는 큰돈을 요구한다. 재능이라는 밑천만으로는 해낼 수 없기에 당신은 어쩔 수 없이 기관의 도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열에 여덟은 여기서도 앞서 말한 스펙전쟁을 체험하고 또 낙오한다.
이 모든 것을 뚫고 나온 인간들에게 이제야 그들의 재능에 대한 시험이 시작된다.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이미 사회에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잣대와 메스들이 당신을 발가벗기고 잔인하게 당신과 당신이 끔찍이 생각하는 가치를 난자한다. 더 무서운 것은 전문가와 지배층의 잣대와 메스보다 대중의 것이 더 가혹하고 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선 누군가가 시스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극렬히 반대한다. 그것이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그들은 그렇게 반응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여론을 만들고 직,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여 장인이 되고자 하는 소수를 눌러버리려 한다. 전문가와 지배층이 오히려 장인의 가치에 대해서만 냉철히 보고자 하는 편이다. 장인 지망생은 한 순간에 적으로 돌변한 대중의 압력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론 그들을 설득, 회유하여야 한다. 비록 그가 가진 가치가 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전문가와 지배층은 칭찬의 글 하나 정도는 선사할 수 있을지라도 장인지망생을 외면할 것이다. 즉, 당신은 대중을 유혹할 수 있고 전문가와 지배층마저 놀라게 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빚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날 것의 가치 발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가치 발견보다 더 어려운 빚어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악조건의 성공의 열쇠는? 무의식을 유혹하라
전문가와 지배층, 피지배층인 대중을 모두 공략하는 방법은? 동시 공략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가장 유력한 안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선 대중의 공략이다. 대중을 공략하는 것이 바로 지배층과 전문가를 뒤흔들 유일한 방법이다. 이는 바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을 공략하려면 무엇이 좋은가? 허점 없고 논리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어떤 작품? 성공방법? 아니다. 대중은 그런 것에 관심 없다.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여유도 없다. 바로 무의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보자. 춤도, 음악도 논리와 이성의 잣대로만 보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안무, 음악 등 그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것은 대중의 무의식에 호응을 이끌 정도로 이성과 감성, 개성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는 말이다. 이것은 전략, 전술적 방법으로 이끈 것이 아닌 무의식을 타깃으로 한 접근에서 가능하다. 내가 앞으로 만들 작품도 바로 이 전략을 따라야 한다. 무의식을 유혹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 논리, 감성, 개성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에 콕 박혀 책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는 가능성이 없다. 내가 직접 컨텐츠 시장에 들어가서 살을 섞고 숨결을 들이키며 경험과 감각을 쌓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길을 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