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by 병아리 팀장

그는 늘 혼자 있던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수업이 끝나면 늘 엎드려 잠을 청했고 쉬는 시간에는 혼자 학교 뒷편을 거닐곤 했다.
그러면서 늘 혼자서 무언가를 끄적이며 쓰고 있었다.
미술 시간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리던 그를 보면 자신의 시간을 멈추고 세상을 설계하길 희망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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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월요일 오전 화장실에서 칼을 맞고 죽어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가 고독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였거나 그와 숨겨진 애인에게 살해당했을거라 수군거렸다.
그의 죽음이 이야기거리가 된 것은 딱 하루였다.

하루가 지나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앞을 향해 꾸역꾸역 살아가는데 바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사물함을 지나가다 한 권의 노트를 발견하였다. 늘 그가 끄적이고 있던 무언가를 적던 노트였다.
굉장히 요상한 이야기가 씌여있을거라 생각하고 못본 척 지나가려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펴보았다.
"한 번만이라도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노트에 씌여있던 내용은 그의 절절한 호소문이었다. 어떨 때 웃을지 모르고 울지 모르는 자신, 용기내어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찾아온 차가운 반응과 어색한 침묵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반응에 대해 일체 몰랐던 그는 교실 한켠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노트에다 우리들의 대화 사이에 자신의 말들을 써놓고 있던 것이다.
"그래, 니 말이 옳아.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이가 없네. 너는 왜 항상 그렇게 얘기해? 내 말 뜻은 그게 아니란 말이야."
"넌 늘 똑똑한 척하면서 저속한 단어만 골라서 쓰더라.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

움직이는 세상에서 함께 발을 맞추는 방법을 몰랐던 그는 노트라는 멈춰진 세계에 자신을 그려넣으며 우리가 살던 세상에 자신을 포개넣으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그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어쩌면 오전 일찍 등교한 그가 화장실에서 몰래 혼잣말을 내뱉는 것을 발견하고 비웃던 누구가 아닐까. 그래서 흥분한 그와 옥신각신 다투다 칼로 찌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자신일까. 항상 정지된 상태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한 마디의 말을 던지던 그가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자 아무도 볼 수 없는 세계로 가기 위해 자신을 찌른 것이 아닐까.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무섭게 생각된 것은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에게는 살아 생전과 사후 모두 다르지 않은 삶을 살 것이란 예감이었다. 늘 우리를 지켜보며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말을 속삭였던 그.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보며 아무도 듣지 못할 어떤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누구보다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어딘가에서. 나지막이 소근소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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