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문고등학교는 학군이 안좋기로 유명한 효원구에서도 공부못하는 학교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도 인문고인지라 문제되는 학생이 많거나 사고가 빈발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동네에 사는 학부모들은 자식이 이 학교를 다니는 것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 이 학교에서 최근에 쥐구멍에 볕드는 것처럼 한줄기 희망이 생겼는데 그것은 얼마전에 전학온 전학생이 전국1등의 모의고사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학교장은 10년만의 경사라며 자축하고 담임선생에게 그 학생의 철저한 관리를 부탁했고 그렇게 학교는 선생들끼리 떠들썩해졌다. 담임 역시 조용한 성격의 학생에 딱히 더 손이 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몇 가지 배려를 해주는 정도야 기꺼이 하기로 하였다.
그 학생의 이름은 이준서. 서울 강남구에서 전학왔다고 들었는데 얼굴을 보면 잘 생겼다는 생각은 들지만 쉽게 기억이 되진 않는 인상이었다. 뭔가 개성이 없는 얼굴이라고 할까. 점이나 여드름 등의 흠은 없지만 이목구비 모두 그만의 특징이 없어 지나고 나면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특징 아닌 특징 때문인지 전국1등이라는 엄청난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 친구들은 그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공부하다 하교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내신중에 가장 중요한 1학기 기말고사 일정이 나왔다. 이 때가 그동안 망친 성적을 만회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시기로 평소에 공부에 진지하지 않았던 학생들마저 이 때만은 진지하게 시험에 대해 생각을 하였고 그것은 이 반의 성적 바닥을 책임지는 김혜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김혜서는 예쁘장한 얼굴과 지성있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공부를 못했다. 아니, 공부를 못했다기보다는 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본인은 철이 빨리 들어서 책에 나온대로 외우는 것은 못하겠다고 투덜대지만 머리에 무언가를 채워넣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다. 그런 그녀도 1학기 기말고사만큼은 겁이 났는데 이제와서 공부하려해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주변에 같이 노는 친구들은 공부에 담쌓은 아이들이고 학원을 다니기에는 부모님에게 돈달라고 이야기하기 싫었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준서였다. 전학오자마자 치른 전국모의고사에서 당당히 수석을 차지하고 지금까지 별 친구없이 혼자 지내는 그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걸면서 공부를 도와달라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거절당한다 하더라도 딱히 손해볼 것이 없었기에 그녀는 그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사실 이준서 주변을 가까이 배회한 적이 있는데 그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우면서도 왠지 모를 신비함을 갖고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녀 스스로도 평소에 하고 있었던 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