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아이(2)

by 병아리 팀장

이준서는 생각보다 쿨한 남자였다. 김혜서가 말을 걸자 그는 기다렸다는듯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몇 마디 나눈지 얼마 안되어 그녀가 공부를 도와줄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선선히 응해주었다. 중학교 이후 학교수업외에 따로 공부를 한 적이 없던 김혜서였지만 이준서의 친절하고 꼼꼼한 설명을 들으며 쉽게쉽게 과목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 둘은 자주 만나게 되었다.

시험이 끝난 후로도 혜서는 준서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서에게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묘한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모르는 것이 없었다. 역사나 문학은 물론 먹거리부터 정치,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모조리 꿰고 있었고 그 하나하나의 출처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도 항상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이던 그는 자신이 알고있는 것들을 늘 메모하며 되새겼고 이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고 난 후에야 다음 공부를 진행하곤 하였다.

시험 이후 혜서의 가장 큰 재미는 준서가 소화해놓은 지식의 산물으 흡수하는 것이었고 이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혜서는 자연스레 원래 놀던 친구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간은 2학기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

수학여행지는 제주도로 정해졌다. 반 친구들은 고3이 되기 전에 맞는 마지막 휴식이라 생각하며 놀거리를 여러가지 생각하였다. 이때는 혜서도 준서가 아닌 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고 준서는 이전처럼 혼자 자리를 지키며 공부하고 있었다. 혜서는 준서도 친구들에게 소개해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바로 관두었다. 양측 다 섞이기 힘든 부류이고 자신이 나섰다 난처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도착할 때까지 혜서는 친구들과 카드와 퀴즈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준서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 평소와 다른 기척을 느끼진 못했다. 혜서가 힐끔 보다 준서와 가끔 눈이 마주치면 후다닥 눈을 피하여서 준서의 안색이 어땠는지는 알수가 없었지만 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밤이 되었다.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취침시간이 되었으니 자리에 들어가 자라고 얘기했지만 아이들은 몰래 자리에서 기어나와 미리 약속한 방에 모여 노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선생님 몰래 가방에 숨겨온 각종 술들이 가득하였다.

혜서는 오랜만에 만끽하는 일탈의 순간에 아찔함을 느꼈다. 이렇게 해방된 자유에 취해 살 때를 잊고 그동안 준서와 둘이서만 얘기하며 지내온 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스스로도 의아스러웠다.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며 술을 마시다 다음 날을 맞이하였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른 채 일어난 혜서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는데 같이 놀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갔는지 궁금하여 다른 방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답 대신 선생님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 가보라고 이야기하였다.

아이들의 무거운 표정이 의아하였지만 혜서는 신경쓰지 않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갔다. 선생님은 혜서를 보자 갑자기 노기어린 목소리를 화를 낸 후 지난 밤의 일을 말해주었다. 혜서와 같이 놀던 친구들은 혜서가 지난 학기에 자기 혼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자신들을 버리고 준서와 어울리며 공부한 것에 대해 화가 나있었다.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 때 혜서에게 술에 약을 타먹여 부끄러운 사진을 찍은 후 그들이 받았던 상처에 대한 분풀이와 앞으로 자신들을 소외시키지 못하게 막으려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혜서가 잠든 틈을 타서 일을 저지르려는 순간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선생들에 의해 다행히 몹쓸 일을 막았다는 것이었다.

담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난 후 혜서는 힘들게 인사하고 그 방에서 나왔다. 자신이 믿었던 친구들이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앞으로 누구와 같이 시간을 보내야할지 앞이 깜깜하였다. 그 때 혜서의 눈앞에 준서가 보였다. 준서를 보자 혜서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녀는 준서를 안고 엉엉 울었다. 준서는 잠시 망설이더니 혜서의 어깨를 토닥이며 묵묵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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