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처하는 법

유재주의 열국지를 읽고...

by 병아리 팀장

어제 전국시대 내용을 다룬 유재주의 열국지를 보았다. 약소군인 조나라의 재상인 인상여의 활약이 인상깊었다. 그의 활약상을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자신이 죽을 처지에 빠진 것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생겨난다. 이는 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처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상여는 화씨의 벽을 들고 기둥을 노려보며 진왕을 꾸짖었을 때, 그는 자신이 죽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상여는 그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적국에 위신을 세웠다. 그러나 선비들 중에는 죽음이 두려워 감히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상여의 이름이 태산보다 무거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지혜와 용기를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평설자인 유재주는 덧붙여 말했다.

옛말에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핵심은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다. 참다운 용기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 이것을 알면서도 참다운 용기를 지니기 힘든 것은 그 죽음 또한 곧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상여는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알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속이 뜨끔하는 말이다. 나는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거지.’, ‘죽기밖에 더 하겠어?’ 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일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지고 부담스러워질 때 마다 특히 그런 말을 내뱉는 빈도수가 많아진다. 나 자신에 대한 조소와 평가절하를 함으로써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만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이 아닐까.

사마천의 말처럼 죽음 자체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약을 통해서, 또 전철에 몸을 던짐으로써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어려운 것은 죽음에 대처하는 행동과 자세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위협에 짧은 시간동안 판단하여 임기응변으로 행동함과 동시에 침착하고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내가 평소에 책을 읽고, 수만가지 학문을 공부하고, 직장에서 나 자신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터지는 이슈에 대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앞서 내가 수행한 여러 작업 자체는 불의의 사건 대응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공부와 업무, 독서를 통하여 내가 진정 도모해야 하는 것은 예측 못할 상황에 민첩하게 대비하기 위한 내공을 쌓는 작업이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자기계발은 그 자체가 목적이나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찾아올 위기와 기회의 바람앞에 나를 좀더 의연히 대처하게 해줄 하나의 경험 정도가 맞는 비유일 것이다.

지금 나는 그동안 일해온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픈 일을 얻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공부나 자격증, 성적 자체가 불안정하고 예측불가의 상황에서 나 자신을 구원해주지는 못한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꾸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단련이다. 토익이 목표가 아니라 영어를 가지고 내가 지원하는 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느냐, 잘 써진 자기소개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일에 나의 경험이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은 어떠한 준비로 메꾸어 회사와 자신간의 동반성장을 도모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31일까지의 휴가 기간은 단순히 책 읽고, 기업 정보나 찾아다니며 이곳 저곳 입사지원이나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어느날 불연듯 찾아올 운명의 단 한 순간을 위하여 미리 나 자신을 점검하고 혁신할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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