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분석

by 병아리 팀장

대학 때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이 다 나보다 잘 된 것을 보면 움츠러드는 것을 느낀다. 단톡방에서 자주 얘기하는 멤버들이 있는데 대기업 다니는 후배 3명, 아버지 사업체를 물려받은 후배 한 명, 학교선생하는 한 명, 유학갔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기업 과장으로 취업하는 후배 한 명, 그리고 이름없는 벤쳐회사를 다니는 나, 이렇게 구성된다.

이 녀석들이랑 얘기하다보면 피하고 싶은 주제가 몇 개 있는데 하나가 회사와 연봉, 두 번째가 결혼, 세 번째가 재테크다. 세 가지 모두 나랑 노는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할수록 내가 아는 것이 없고 얼마나 저차원인 세계에서 사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마냥 그들이 대단하다 생각은 안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에 비해 나는 작디작은 회사의 직원으로 내 연배 직장인들 평균을 조금 넘는 연봉에 임자없는 홀몸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주식 등의 재테크 정보는 남들이 떠드는 것만 간신히 캐치하는 수준이고 더 큰 문제는 이 세가지 모두 내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단기간에 올라갈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세 번이나 회사를 옮긴 나는 커리어가 꼬여 마땅히 옮길 회사가 없으며 혼자 쉬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상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데 한없이 인색하고 게으르다. 재테크에 투입할 돈은 진작에 부모님께 따박따박 상납하고 중도금 대출을 부지런히 갚고 있으니 여유가 없다는 말은 빈 말은 아니다.

허나 나에겐 그들에겐 없는(그들이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장점이 있으니 바로 여유다. 난 직장상사의 관계 때문에 업무보고를 언제 할지, 오늘은 상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할지, 메일을 보낼 때 누구를 참고로 넣을지 말지, 오늘 회의 후 무엇을 했다고 보고할지, 오늘은 야근할지 회식할지 따위의 고민은 일체 없다. 나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회식이나 워크샵 따위는 일절 없으며 회사에 있는 동안은 그냥 내가 할 일과 한 일을 메일로 보고하고 상사가 제지안하면 쭉 해나가면 그만이다. 그외의 터치와 간섭, 신경써야되는 부분은 과장없이 전무하다.

나는 예순 중반인 아버지가 아직 현역으로 일하시고 어머니도 건강하셔서 내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부모님 건강을 위해 돈을 쓸 일이 없다. 내 돈은 부모님께 드려 가족 전체를 위한 재테크에 활용되고 그렇게 모인 돈은 가족 중 누군가가 필요한 일을 할때 투입된다. 내 아버지와 형님은 증권회사를 다니고 아버지는 부동산 투자의 전문가라 딱히 내가 재테크에 대한 지식을 쌓아 작은 돈으로 위험성 높은 큰 투자를 하기보다 가정에 돈을 몰아넣어 더 크고 안정적인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높다. 이렇게 모인 돈은 집을 산다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유학을 간다거나 (심지어 사업을 산다거나) 등등 목돈이 필요한 곳에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내 한달 순수 지출금액은 평균 36만원이고 내 수입은 회사 연봉과 내가 사놓은 집의 월세를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금액이 들어오기에 나보다 더 버는 녀석들에 비해 순수 모으는 돈이 그다지 떨어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비록 아직은 무가치하지만 나에겐 내가 다니는 회사의 지분과 좋은 대우를 차지하기 유리한 포지션에 있으며 내가 다니는 회사의 비전은 대충 보든 디테일하게 보든 상당히 좋은 편이다. 유사모델이 없지는 않지만 대기업이 차지하기 상당히 애매한 시장이고 비록 협소한 마켓이지만 경쟁자라고 볼만한 업체도 없기에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진다던가, 투자를 받는 것과 영업에 목메여야하는 상황 따위는 일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보다 튀기도 어렵지만 남들보다 딱히 망하기도 어려운 아주 탄탄한 완충지대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연애도 간헐적으로 이뤄지긴 하지만 그래도 내성적이고 귀찮아하는 성격에 비해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 처음보는 여자와 영화를 보거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갖고 있으니 아예 노력을 안하거나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즉, 내 상황이란 누군가를 이기기도 힘들지만 딱히 누군가에게 뒤지지도 않는, 밀물과 썰물 사이의 파도 위에 떠있어 제자리만 둥둥 떠있는 그런 조각배와 같은 처지라는 것이다. 만족스럽게 보면 만족스럽고 아쉽게 보면 아쉬운 그런게 내 삶이고 내 모습이다. 딱히 누군가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면 지지도 않는다.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에 욕심 안부린다면 무시당하거나 푸대접당할 일도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대한 관심보단 어쩌면 다른 것에 신경을 써야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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