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리뷰

[영화리뷰]그 후

비겁과 뻔뻔의 극치를 달리는 90분 교향곡

by 병아리 팀장

홍상수의 21번째 영화이자 <오!수정>, <북촌방향>에 이은 세번째 흑백영화. 전작인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어 홍상수 자신에 관한 자전영화입니다. 늘 홍상수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오던 권해효가 처음으로 영화의 전체를 이끄는 타이틀롤을 맡고 김민희, 조윤희, 김새벽이 주변인물로 나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사 사장인 봉완(권해효)은 딸아이가 있는 유부남입니다. 아내(조윤희)와의 결혼에 권태기를 느낀 그는 출판사 직원 창숙(김새벽)과 몰래 사랑하는 사이지만 감정문제로 헤어지고 그녀의 빈자리에 아름(김민희)이 입사하게 됩니다. 이후 아내는 봉완이 내연의 여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상대를 아름으로 오해하는데...

전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도피한 여성의 삶이라면 '그 후'는 불륜을 저지르고 그 자리에 그대로 살아가는 남성의 삶을 그립니다. 전작의 김민희가 맡은 역할은 최소 자신만의 철학을 갖추고 행동으로 이어가는 타입이라면 권해효가 맡은 봉완은 실체가 없다는 궤변을 빌미로 무책임, 비겁, 자기편의의 삶만 살아가는, 심지어 그것을 의식조차 못하는, 소인배입니다. 그럼에도 비겁, 뻔뻔이라는 말에는 극도로 흥분하면서 조금이라도황이 버거워지면 회피하고 말죠. 본래는 이 캐릭터의 언행을 보면 영화를 끝까지 봐야하냐는 생각이 들지만 권해효의 의뭉스러운 연기가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치닫는지를 끝까지 궁금증을 갖고 보게 합니다.

김민희, 김새벽, 조윤희 세 여배우의 연기 모두 훌륭합니다. 특히 김민희는 실제로는 불륜의 당사자이지만 영화에서는 타인의 불륜에 의해 피해를 받는 제3자 역을 맡음으로 아이러니한 느낌을 줍니다. 특유의 믿음 1. 자신은 언젠가 죽는다 2.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라는 허무해보이는 철학놀음도 소주에 고기 하나 얹고 자연스레 얘기하는 그녀를 보면 동년배 연기자 중에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 같습니다.

홍상수 영화의 특징은 상영시간은 매우 짧지만 관람 후 할 말이 정말 많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평론가들의 영화리뷰를 검색해보시면서 본인이 영화보는 내내 생각한 의견과 비교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직 홍상수 영화에서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재미입니다.

P.S : 극중 권해효의 아내로 나오는 조윤희 배우는 실제 권해효의 아내라고 합니다.

P.S : 이 영화는 19일만에 촬영하고 한달만에 편집해 칸 영화제에 출품한, 엄청나게 스피디한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홍상수 외에 누가 이런 작업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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