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안좋은 예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화 자체는 배경으로만 두고 드라마와 이를 구성하는 캐릭터를 중시하는 스토리형태의 영화와 사건으로서의 실화 자체를 다루는 영화. 전자의 예로는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를 들 수 있습니다. 캐릭터들간의 드라마를 중시한다면 타이타닉처럼 배의 침몰이라는 배경 아래 허구의 창작 드라마를 그리고 실화 자체를 앞세우려면 덩케르크처럼 스토리 구성요소로서의 캐릭터를 버리고 사건 자체를 그려내는 것이죠. 전자는 역사왜곡 등으로 실화의 매력을 상당부분 잃을 위험성이 있고 후자는 자칫하면 다큐멘터리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헌데 군함도는 이 두 가지를 다 잡으려다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의 악명높은 탄광섬 군함도로 들어온 6인의 메인 캐릭터들. 악단(황정민, 김수안), 접대부(이정현), 깡패(소지섭), 독립군(송중기), 옥중 지도자(이경영)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작은 스토리를 이루고 있고 있기에 이들의 사연만 나열해도 2시간의 러닝타임으로는 부족합니다. 더구나 군함도라는 세계관에서 조화까지 맞추기에는 더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 군함도라는 역사적 배경까지 가져가려는 무리하게 끼워맞춘 톱니바퀴들은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각자의 소리만 내며 2시간 20분을 내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탈출씬에서는 결국 각자의 톱니바퀴가 부딪히며 파열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해운대'의 플롯 부실과 '인천상륙작전'의 애국심리가 조합된 안좋은 영화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6인의 캐릭터들에 대해 황정민만 부분적인 교점이 있을 뿐 각 캐릭터는 4각구도 내에서도 따로 놉니다. 황정민-김수안, 소지섭-이정현, 송중기-이경영으로 묶인 그룹들은 보다 큰 군함도라는 세계의 이야기로 승화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둥둥 분리되어 움직입니다. 때문에 엔딩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어느 캐릭터에게도 공감도 몰입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열심히 만든 영화가 곧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군함도가 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군함도라는 소재만 배경으로 소비했을 뿐 역사적 사실이 부르짖는 본질도 드라마적 가치도 잘 구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의도에서 읽히는 좋은 뜻과 의도는 작품의 완성도와 결코 비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부당거래 이후 꽃길만 걷던 류승완인지라 높은 기대감만큼 실망이 커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군함도라는 소재는 영화로 만들기엔 만만치 않습니다. 관심을 돋우는 배경과 역사가 있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역사의 결론은 도저히 대중상업영화가 마땅히 제시해야하는 메세지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군함도의 조선노동자들은 자력으로 탈출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가사키에는 도망자들의 묘지뿐이고 이들은 원폭이 터지고 난 후 나가사키 복원에 힘쓰다 결국 몇명만 살아 돌아왔고 거기에 정착하여 살고 있을 이름모를 이들도 많습니다. 이를 영화로 만들려면 있지도 않았던 독립군의 군함도 파견이나 탈출 작전 대신 군함도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처절한 노동자 생활과 그 끝을 그리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차라리 군함도를 영화로 만든다면 덩케르크에서 놀란이 취한 방식을 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봅니다. 이상 군함도 후기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