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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Aug 08. 2017

글을 쓴다면 밥 로스처럼

내가 주로 글을 쓰는 경우는 회사에 있을 때, 빈 시간을 이용해서다. 점심식사 이후 산책을 다녀와서 나에게는 약 30분의 시간이 허락되는데 이 때 평소에 떠올랐던 글감을 조합하고 글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첨부하여 글을 올린다. 중간에 양치하러 다녀오는 시간까지 제외하면 대략 25분의 시간만이 허락되는데 이 안에 글을 올리다보니 탈고와 수정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루에 글 하나씩 올리는 것에 욕심을 내다보니 정작 글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검토와 수정을 등한시하게 되고 그 결과 1년 반의 시간동안 매일 글을 써도 소재만 다를 뿐 언제나 비슷한 수준의 글만 올라오게 된다. 500개의 글을 올려도 매번 500번의 다시 시작만 하고 있으니 글실력이 오르질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글 하나의 퀄리티에 집중하게 되면 간신히 생활화된 글쓰기 습관이 통채로 무너질 수 있다. 당장 내가 장편은 커녕 단편소설도 쉽게 쓰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다. 지금껏 서론만 쓴 채로 내팽겨 쳐놓은 글들이 몇개던가. SF, 스릴러, 힐링, 팩션 등 소재는 많지만 끝까지 완주할 인내심도 능력도 없는 채 글을 쓰다 비공개로 저장해놓은 것만 10개가 넘는다. 완성된 글을 쓴다며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에 투자한다면 글실력을 올리기는 커녕 그마저 쓰던 넋두리 글을 쓰는 것마저 두려움을 느껴버릴 것이다. 아무리 짜투리 글이라도 완성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글의 질 때문에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제한된 시간, 올려야할 글실력, 꾸준한 글쓰기를 모두 만족시킬 비법은 무엇일까. 이 고민을 하던 중 의외의 인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천재화가 밥 로스이다. 밥 로스는 본래 공군 장교 출신으로 알래스카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휴식시간마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빙산을 배경으로하는 풍경화를 그렸다. 그 때 당시 유화작가들이 쓰지 않는 유화 그림을 여러번 덧칠하는 방식인 웻웻(Wet Wet)기법을 통해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짧은 시간동안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밥 로스가 고안해낸 방식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죄다 풍경화였고 A부터 Z까지의 완성도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당시 유화계에서는 그를 사이비로 취급하였다. 허나 9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밥 로스는 미술을 대중화한 위인이자 뛰어난 미술가로 추앙받고 있다.


하루에 30분밖에 글 쓰는데 시간을 못들이면서 무슨 글을 쓰겠다는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밥 로스를 떠올리자. 물론 나는 퇴근 후 휴식하는데 그 시간을 쓰지만 밥 로스 역시 군활동을 끝난 후에는 그림을 그리진 않았다. 이왕 쉴 것이라면 푹 쉬고 밥 로스처럼 끊임없이 글을 쓰며 그 안에서 답을 찾아보자. 30분의 호흡이라도 분명히 그 안에 정답에 한없이 가까운 글의 형태와 주제는 존재할 것이고 나는 거기에 도달하면 되는 것이다.


매일 넋두리같은 글을 쓰면서 무슨 작가가 되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밥 로스를 떠올리자. 밥 로스가 그린 것은 풍경화, 그것도 빙산 뿐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화가로서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내용과 장르보다 꾸준히 하나의 주제로 수렴해가나는 것에 집중하자.


매일 한 페이지의 짧은 분량의 글을 쓰면서 무슨 글실력이 늘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밥 로스를 떠올리자. 밥 로스는 매일 같은 구도의 산을 그리면서도 다양성을 모색하였고 그가 그린 그림들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미술의 세계를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짤막글이라도 그 주제와 형식이 맞아떨어진다면 아직 누구도 쓰지 못한 새글이 될 수 있다.


시간과 주제, 분량이 곧 성공한 글이 아니다. 작가의 기질과 표현하고자하는 이야기, 그에 맞는 형식이 독자와 만날 때 비로소 성공한 글인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더 들이지 못해서 글실력이 안느는 것이라 치부하지 말고, 글의 내용이 재미가 없어서 반응이 없다 단정하지 말고, 분량이 적어서 보잘 것 없는 글이라 포기하지 말자. 매일 허락되는 이 30분 안에서도, 분명 길은 있고 나는 그 길에 맞게 스스로를 연단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 형식, 분량, 나 자신까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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