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서 : 어느 살인자의 고백(완결)

by 병아리 팀장

고3때 나는 처음으로 연애를 하게 되었다. 미리 말했지만, 나는 그 때까지(비록 여러 가지 더러운 일을 했지만) 여자 경험이 없었다. 나의 지배력을 무너뜨릴 더러운 타락의 씨앗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접근해오는 여자는 많았지만, 그녀들을 병풍으로 이용했을 뿐, 섹스는 커녕 키스도 한 적 없다. 나를 두려워할 이들이 필요할 뿐, 나를 가지려 하는 자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시도 또는 맘을 먹은 여자는 모두 내 식대로 처리했다. 동물 수준으로 타락시키던가, 집단 린치를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하튼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이유와 경위는 모른다. 정신차려보니 내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붙어있는 여자애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내 분류기준에 들어있지 않은 부류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그녀가 어려워졌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앎이라는 영역으로 다룰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공부나 학습, 경험과 다른 것으로 나에게 어떤 불쾌감도 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 여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통제를 벗어나 내 중심에까지 들어왔다. 나의 통제력이 듣지 않는 유일한 예외가 생긴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착해졌다던가, 내 지위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생긴 구멍만큼의 권력을 수족들에게 적절히 분배해주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철저히 즐기기로 했다. 알 수 없고, 다룰 수 없는 무언가를 그냥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양지의 인간들이 입에 닳도록 말하는 무언가임을.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나를 늘 곤란하게 만들었고, 나의 관심을 한 곳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내가 10년의 세월동안 쌓아놓은 왕국은 사랑이라는 열에 의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내 왕국을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단, 나에게 위해가 생기지 않게끔 뒤처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내 왕국은 세 곳으로 분할되었고, 나에 대한 공포가 뼛속깊이 새겨진 녀석들이 그 지배자가 되었다. 그들을 한번에 추락시킬 약점은 여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수시로 나에게 인사와 복종의사를 보내왔다. 지옥을 경험해본만큼, 그들은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나는 마음껏 내 여자를 사랑했다. 한없이 사랑이라는 행위를 했다. 고3 겨울에 첫키스, 그리고 12월의 첫 경험. 이윽고 같은 대학 입학까지.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양지의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와 권력, 그리고 사랑이 내 손아귀에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었다. 나는 그저 사랑안에 있으면 되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되었다. 나는 눈꼽만큼의 돈과 권력도 필요없는, 완벽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2001년 봄. 나의 19살은 끝났다. 그리고 나의 시간도 1년만이 남아있었다.

20살 여름, 나는 그녀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결혼을 허락받고, 더 큰 자유와 행복을 얻고 싶었다. 양지에서의 행복, 그것은 통제와 지배가 아닌, 책임과 인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얻기에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12년만에 나의 어머니를 만났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어머니로서.

나는 20년동안 증오를 배운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느낀 것은 증오가 아닌 경멸, 조롱 같은 속 깊은 곳에 느껴지는 쓰디 쓴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배격하고 부정하고 짓밟고자 하는 증오는 아니다. 속안이 타오르는 극한의 감정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그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모든 것에.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비록 본인의 의도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손에 넣은 그녀에게. 어쩌면 응당 내 것이어야 할 것을, 그녀가 가졌기에 그토록 사랑스럽게 자란 것이고, 그것이 나를 그녀에게 종속되게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한 감정 이상으로 그녀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를 죽이고, 그녀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한 때, 내 어머니였던 사람까지 말이다.

어머니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내 눈에는 나를 모른 척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부정하고, 없던 것으로 생각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절대.
나는 그녀와 그녀의 부모 모두 죽이기로 결정했다. 예전의 나와 같이 철저한 계획같은 것은 세우지 않았다. 이 작업만큼은 인위적인 통제가 아닌, 내 운명에 맡겨보고 싶었다. 신이 있어 나를 막을 수 있으면 한번 막아보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사람을 찌를 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칼이 살을 파고 들어갈 때의 그 아찔한 감촉이란...내 밑에 있던 놈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면 사람 하나 죽여본 적 없던 내가 그들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가히 신의 은총이라 할만 했다.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그녀의 가족 모두를 죽였다.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그녀. 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데는 네 번의 칼질이면 충분했다. 먼저 남자인 그녀의 아버지의 뒷목을 잡고 저항할 틈도 없이 경동맥을 일거에 찔렀다. 용솟음 치는 피의 향연은 나를 더욱더 달구었고 나는 한 때 내 어머니였던 사람의 심장에 두 번째 나이프를 박아주었다. 이윽고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목에 세 번째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마지막으로 내 배에 한 번. 그렇게 나의 살인은 완료되었다.

하지만 내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살아 숨쉬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곳 현실에서.
지금 나는 지옥을 살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그 때, 그 장소를 향해 걸어간다. 시간을 역행하면서 살아가는 것. 다시 죽어도 또, 그 때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것.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아있는 귀신으로 만든 나의 과거를 향해 계속 가야한다. 이 시간과 공간이 나의 현실이고 나의 지옥이다. 시간을 역행하는 자. 나는 리버서(Revers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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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서(Reverser)

시간을 역행하는 자. 전생에 자살한 자들은 사망 후 전부 리버서가 된다. 인류멸망의 그날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들이 보통 사람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의 단위는 1년이다. 1년이 지나면 그 1년 앞의 시간으로 타임워프하게 된다. 2013년 12월 31일 이후 이들이 맞이하는 시간은 2012년 1월 1일인 격이다. 자신이 일할 사회도, 축적할 재산도, 가정도, 친구도 이들에겐 1년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리버서로서의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거나 또는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경우, 역행의 여정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다. 리버서의 운명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자살을 막는 것 뿐이다. 이후 그들은 완전한 소멸되어 무로 돌아간다. 마침내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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