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인 이야기

by 병아리 팀장

그는 늘 강해지는 것을 원하였다.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던 그는 강해지고 난 후 생각하기로 결정하였고 오직 강해지기 위해 단련하고 기도하기를 반복하였다.
하루도 거르지않고 훈련과 기도를 반복하기 10년.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에게 보통 인간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 그가 얻은 능력은 '진화'능력. 그가 노력한만큼, 상처받은만큼, 적응되고 면역되고 강해진다. 그렇게 그는 다시 10년간 세상을 배회하며 살아갔고 상처받은만큼 면역되고 진화하며 강해졌다.
세상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온몸으로 겪고 조갯 속 진주처럼 보화로 거듭난 지능과 육체를 갖게 된 그 사람. 허나 그에게는 모든 것을 경험한 자에게 찾아오는 허무에 진화하는 능력은 없었고 더 이상의 목표가 없던 그는 정처없이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노화와 죽음에도 면역이 되어버린 그 사람.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 삶을 산지 수백년이 된 그가 원하는 단 한가지 소원은 죽음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고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죽음. 그는 죽기 위해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서 스스로 상처내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있다.

그녀는 늘 사랑받기를 원하였다. 자신의 손길이 닿는 것에 생기가 넘치고 평범한 하루에 새로운 일이 가득차는 삶.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각자가 다른 의미로 자신을 아껴주고 그만큼 자신도 사랑을 돌려주는 삶. 태어나길 사랑스럽게 태어난 그녀에게는 별도의 노력과 갈급함 없이 그것이 가능하였고 그런 삶이 계속될 줄 알았다.
하루도 거르지않고 사랑받음이 계속되기 스무해. 늘 봄과 같던 그녀의 인생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다른 이의 사랑을 받는 그녀에게 상처받아 떠나는 남자의 수가 늘어나는 반면,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수는 점점 줄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채워졌던 사회적 애정도 서서히 줄어들고 그 누구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을 잃는 경험을 처음했던 그녀에게 이 일은 재앙과 같았다. 허나 재앙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기근과 역병 등 각각 다른 형태의 불행을 겪었고 오래지않아 그들은 그녀가 불행의 온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두에게 사랑받았지만 이제는 마녀라 매도당하게 된 그녀. 사람들은 악마가 그녀에게 저주를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는 곳에서 버림받고 그녀는 세상을 떠돌아다녔지만 그녀가 가는 곳마다 불행은 어김없이 따라왔다.
불행과 저주를 몰고오는 마녀가 되어버린 그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 삶을 산지 여섯해가 된 그녀가 원하는 단 한가지 소원은 보금자리였다. 자신의 저주가 닿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단 한명의 남자. 그녀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 오늘도 세상 어딘가를 배회하며 구원의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죽음을 원하는 남자와 정착를 원하는 여자.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맺어진 남녀. 결코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두 남녀가 각자의 목적으로 인해 맺어진 기막힌 이야기. 신의 축복과 악마의 저주, 어느 것이 더 강할지는 둘째치고 이 두 사람의 생활은 어떻게 되었을까.

둘의 부부생활은 10년간 지속되었다. 다행히 여자의 불행은 남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의 진화능력이 여자의 저주를 이겨냈다고 볼 수 있다. 기근과 역병, 갖가지 불행은 남자에게 닿자마자 바스라졌고 이후 다양한 저주가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왔으나 남자는 그 모든 것에 적응하고 살아남았다. 이 치열한 공방은 두 사람이 같이 사는 동안 계속되었고 언제나 방어하는 남자쪽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 당사자의 관점에서 여자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남자는 얻지 못하였다. 허나 남자 역시 지독한 허무감이 사라졌기에 딱히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이 찾아오고 진화하며 적응하는 삶을 산지 9년. 여자의 저주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지만 목적의 불일치라는 새로운 사태가 두 사람에게 찾아왔다. 안정된 보금자리를 얻게 된 그녀는 과거처럼 만인에게 사랑받는 삶을 원하였고 간신히 허무함의 지옥에 벗어난 그는 아내의 외도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자는 가정을 유지하며 사교계 생활을 하였고 남자는 아내의 공백만큼 적응할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느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버려질 것이라는 불안함보다는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여자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남자는 떠났고 여자는 홀로 남았다. 잠시 없어졌다 생각했던 불행의 저주도 다시금 찾아왔다. 허나 남자도 여자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여자의 뱃속에는 남자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범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히 보였다. 그 작은 몸에 불행과 그에 적응하는 진화능력이 동시에 베어있던 것이다. 아이의 진화능력은 어머니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녀 역시 자신에게 찾아오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들 모자는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후 그녀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남자와 재혼하였고 수십년을 살다 죽었다. 두 사람의 아이도 나이가 찬 후 가정을 이루었고 평범한 사람과 피가 섞이며 진화도 저주도 옅어졌다. 그 후손은 세상을 가득채웠고 결국 평범한 사람들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이 바로 그와 그녀의 후손이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모두 불행을 타고나고 그에 적응하는 진화능력도 있다. 핏속의 유전자는 한없이 옅어졌지만 그래도 분명 존재한다. 저주가 찾아오고 극복하는 하루하루, 평범해보일지 몰라도 분명히 초자연적인 음과 양의 힘이 우리 몸속에 작용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불행이 찾아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생각되면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외쳐본다. 아직 죽지않고 세상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남자, 허무함과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후손을 찾아와 지켜줄 그 남자를 불러본다. 나는 당신의 자식입니다. 그 어떤 불행과 역경에도 적응하며 강해지는 당신의 자식입니다.

이것은 내가 아는 어느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보통 사람으로 보이는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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