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와의 인터뷰(1)

1. 멀독(1)

by 병아리 팀장

미국의 태양은 무자비하다. 사람들 머리위로 햇살을 내리꽂으며 자기 눈 밑에서 바글거리며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들을 비웃듯이 좀처럼 그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재미있는 볼거리를 보여 달라는 듯 기세등등하게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깔깔대며 햇빛을 난사한다. 저항할 힘이 없는 나약한 피조물은 쫓기는 듯 각자의 직장으로 줄행랑치듯 출근한다.

언제나처럼 나는 회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근처 로터리 골목에 있는 토스트 가게에 들렀다. 이곳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는 동안 찻길너머 회사를 바라보며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토스트 가게 주인 데이브 씨는 늘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한다. 돈으로 얼마 되지 않는 토스트에도 이토록 여러 정성을 쏟는 그를 보면 진심어린 경외심이 절로 든다. 그렇다고 내가 그처럼 되고 싶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에게 있어 매일같이 혼자 이곳에서 아침을 때우고 건너 편 회사에 들어가는 나는 어떤 존재일까.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덧 데이브 씨는 내 손에 토스트를 건네주며 언제나처럼 짧은 격려를 해주었다.

“멀독 씨,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삶 되세요.”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도 쓴웃음만 나왔다. 20분 후에 나는 저 콘크리트 박스 안에 들어가서 2평 남짓 할당된 내 공간에서 늘 하던 대로 오늘의 이슈를 체크하고 내가 취재할 주제와 대상을 선정하여 유치원 다니는 내 조카보다 더 고집불통인 상사를 설득해야 한다. 이마 위보다 아래쪽에 더 많은 털로 덮여있는, 쉽게 말해 대머리인 주제에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얼굴의 절반을 덮어버린 내 직장상사에게 살살 아부를 떨며 취재 기획안과 기사 기고를 허락받아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그렇게 아침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난 후에야 나의 개인 업무가 시작되고 말단 기자 수십 명의 원고 중에서 차별성 있으면서도 유별나지 않은 안건을 골라 가안을 완성시켜 또 다시 상사에게 확인받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이런 게임에서 무슨 승리가 있단 말인가요, 데이브 씨. 당신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데이브 씨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웃음을 선사하며 말했다.

“데이브 씨도 오늘 하루 승리하는 삶 사세요.”

데이브 씨는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의 대전 상대는 토스트일까, 그 토스트를 사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그의 금일 매출을 계산하는 마누라일까.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그의 승리를 기원하며 내 사무실로 들어섰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은 아이세 저널이다. 좁으면 LA, 넓어봐야 캘리포니아 주 안에서 한 주 동안 발생한 소식과 흥밋거리 이야기를 신문으로 담아내는 것이 우리들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LA와 캘리포니아 주가 넓고 거주민도 많다지만 이곳에 3년만 살다보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겪게 된다. 우리 옆집 악동 꼬맹이는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도 내일 날씨를 맞출 수 있고, 해외여행은커녕 LA를 떠나본 적도 없는 내 친구 콜린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를 보더라도 그가 외국인인지 아닌지 맞출 수 있다. 이런 괴짜들로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평범한 소식으로 어떻게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나는 다른 건수를 찾으려고 분주히 돌아다니고 오늘도 내 손에 쥔 원고에 대한 기재를 허락받고자 두 눈에 힘을 주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중이다.

“로져 씨, 안녕하세요.”

로져라는 이름의 경비원은 늘 눈 깜빡거림으로 인사를 대신하곤 하는 데 내가 보기엔 그마저도 이젠 힘들어 보인다. 10년이 넘게 이곳에서 근무했다고 하는데 출, 퇴근할 때마다 늘 같은자리에 힘없이 앉아 있다. 동료 기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집도 가족도 있다고 하는데 왜 내가 볼 때는 항상 좁아터진 안내데스크 옆 책상에만 앉아 있는지 의문이다. 가끔씩 로져는 회사 아래 지하실에서 기거하며 살아가는 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거룩한 성전인 나의 사무실이 보인다. 사무실 직원들 모두 이미 출근한지 오래된 듯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나는 능숙한 동작으로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위에 어지러이 놓인 원고와 편지 더미를 정리하였다. 이윽고 숨 한번 들이쉬고 내 먹이사슬 바로 위에 위치한 직속상사 듀이의 자리로 갔다.

듀이는 나보다 5년 먼저 입사한 선임이지만 사무실 내에서 불리는 직급은 나와 같다. 그 밑에는 나를 포함한 3명의 신참 기자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보다 나은 점은 기껏해야 기사 원고를 심사하여 윗선에 전달하는 권한밖에 없는데 나를 대할 때는 ABC뉴스 국장처럼 행동한다. 머리는 과장 조금 보태서 철저한 민무늬 모양의 대머리이고 얼굴은 코와 구레나룻 수염으로 지저분하게 덮여 있다. 그야말로 취재를 거부하게끔 만드는 외모를 타고난 사나이다. 그런데 왜 기자를 하겠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다.(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직접 취재를 해야 하고 기사를 작성한 뒤 원고를 상사에 제출해야 하는 입장이다.) 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대머리 보스와의 1라운드 공을 울렸다.

“듀이 씨, 안녕하세요? 어제 제가 드린 취재기획 건은 살펴보셨나요?”

듀이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볼품없는 제 수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혀를 찼다. 내가 그 앞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답변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보아하니 오늘도 1라운드 KO패 판정이 나올듯한데. 좋은 말로 한 번 더 얘기하려 하는 찰나 대머리 털보가 카운터 공격을 날렸다.

“멀독, 이제 이 바닥에서 일한지도 꽤 됐잖아. 현실과 이상도 구분 못하나. 우리 신문은 지역소식 전달을 목적으로 창설된 곳이야. LA주민들에게 그들이 사는 이 도시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날 지를 알려주는 전달자가 우리지. 새롭게 개정된 캘리포니아 주 세재 개편안이라든가 이곳의 자랑 헐리우드에서 어떤 영화가 촬영 중인지 하는 것들 말이지. 자네같이 실력 없는 애송이는 늘 기본을 무시하고 큰 건 하나만을 노리며 달려들다 제풀에 지쳐버리고 말아.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 건가. 언제야 기자 노릇 해 볼 생각을 할 거냔 말이야. 기본적인 일부터 차곡차곡 쌓으며 경력을 올릴 생각은 안하고 중간에 엎어질 건수만 주구장창 고집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냔 말이야. 멍청한 애송아.”

오늘도 역시나 아침부터 한바탕 욕설을 해주는구나. 생각 같아선 잘 빠진 대머리에 주먹을 내리꽂아 버리고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훌륭히 참아냈다. 지금 한방 치고 이곳을 떠나기보다는 언젠가 큰 건 하나 터뜨리고 저런 인간 따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더 큰 복수이리라. 아침부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비꼼과 조롱을 한동안 더하고 난 후에야 대머리 털보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나는 역시 언제나처럼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내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늘 있는 일이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것은 이제 관심도 없다.

나는 내가 맡을 취재거리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노려보았다. 관록이 많으신 털보상사의 말처럼 철없는 삼류기자의 만용일까, 아니면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일주일간 정리해온 기재 초안을 쳐다보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그 초안 옆의 사진에는 연륜이 있어 보이는 훤칠하고 잘생긴 노인의 얼굴이 있었다. 에드워드 게일이라는 이름의 소설작가. 나의 이번 취재대상은 바로 이 사람이다.

업무에 매진하기 위해 오전에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고자 커피를 한잔 들이키며 내가 쓴 기사 초안을 훑어보았다. 역시 구겨진 자존심을 달래기엔 카페인만한 것이 없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쓸 기사에 관해 생각을 정리해보기 했다. 참, 그전에 내가 이 위인을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 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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