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와의 인터뷰(2)

1. 멀독(2)

by 병아리 팀장

에드워드 게일 씨는 20xx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해마다 있는 노벨상 수상자가 뭐 그리 대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문학계에 등단한 이래 아무도 그와의 인터뷰에 성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와의 인터뷰는 미국 대통령과의 약속 이상의 가치를 가진, 기자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일확천금의 기회 같은 것이다.

이 괴짜 같은 인간은 스웨덴에서의 연설에서 횡설수설 자기말만 하고 갔다. 작품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인생에 관한 내용은 일절 없이, 수수께끼 같은 몇 가지 비유적인 단어 몇 개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시상식에 참여한 권위 높으신 몇몇 분들은 그의 기인 같은 행위에 경악하면서 적잖은 비난을 해주었다. 결국 그는 대중의 관심에는 밀알 하나 만큼의 보답도 안 해주고, 난장판을 만들고 간 것이다.

다른 작가나 비평가라면 미친놈 취급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우리들 기자들 세계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마다 배출되는 상이라고는 하더라도 유래 없는 평단의 극찬과 함께 위원회 의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그를 수상자로 선택하였다. 더불어 그의 수상작은 문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하나같이 압도적인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에 기록적인 판매고를 달성하였다. 노벨문학상 역사 이래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이 정도로 동시에 갖춘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인물을 아직까지 아무도 인터뷰에 성공하지 못한 지금 이 현실은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몸서리처질 정도의 수치이자 기회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를 만나야 한다. 그에게서 나오는 말이 이 세상 것이 아닌 외계어라 할지라도 한 알도 남김없이 받아 적어 내야한다. 그것이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사건을 관점만 살짝 꼬아 내 것인 양 등재하며 살아가는 나의 기자 인생에 전기를 마련해 줄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딜 봐도 비정상적인 이 인간은 거주지도 불분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행적도 남기지 않아, 그 독한 뉴욕타임즈와 CNN 기자들도 아직까지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인간을 찾으려면 어디서부터 뒤져야 할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찾아내고 말리라. 그러기 위해 게일 씨의 과거 행적을 역추적해 보고 이를 통해 그가 현재 어디있는지에 대해 추리해보기로 하였다. 헛고생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어느 도박판에도 리스크는 있는 법, 판돈이 큰 내기인 만큼 도전할 가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전 작품을 출간한 이래로 이번 수상작을 내기까지 상당한 공백 기간을 가졌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을 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슬럼프를 겪었거나 작품준비에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는 얘기다. 수상작은 한 인물의 내면적인 심경의 변화와 자연, 우주에 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이다. 자료조사를 위해 굳이 여러 곳을 전전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이 작품을 내기까지 한 곳에 장기간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하와이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의 주소지는 미국 맨하탄이지만 자택엔 촌수를 헤아리기 힘든 친척이 살 뿐 그는 늘 부재중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는 수상식 이후에도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빈약한 논리와 근거에도 불구하고 하와이 행 티켓을 끊는다는 것은 충분히 승산 있는 도박이다. 현실적인 이득만 따진다면 그와의 인터뷰 자체를 포기하고 언제나처럼 내년도 국가 예산안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관해서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현실과 이번만큼은 이별을 고하고 싶기에 내 인생 처음으로 결자해지의 선택을 하려는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듀이가 ‘어디가?’ 라고 묻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무시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회사를 나와 거리를 배회하며 여러 생각을 하였다. 자기생각만을 고집하는 대머리 털보를 설득하며 이 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는 애초부터 생각도 안 했다. 문제는 방법이다. 어떻게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고 유유히 취재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말단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1년 장기휴직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는데 몇 가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첫 번째가 임신, 두 번째가 사고로 인한 부상, 세 번째가 우리 회사에만 있는 기획취재. 지금의 나로서는 세 번째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세 저널 창사 이래 세 번째 케이스가 성공한 적은 없다. 이유는 그 난해한 조건 때문이다.

일단 기획취재라는 것이 생기게 된 연원부터 밝혀두고자 한다. 지역소식지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초대 아이세 저널 국장은 직원 중 일부를 모아 별도의 팀을 구성하였다. 이름하여 기획취재팀. 다른 부서 직원에 비해 급여는 적지만 6개월에서 최장 1년의 기한동안 집중취재가 가능한 부서였다. 취재에 필요한 경비 및 기타 부대비용도 어느 정도의 제한은 있지만 부족하지 않게 사용 가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기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에 의해 부서는 폐지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대 국장은 기획취재팀 프로젝트의 실패에 따라 이사진에 의해 퇴진하게 되었다. 단, 그는 떠나면서 본인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인지 직원 장기휴가 항목에 기획취재라는 항목을 만들고 이를 사규로 정해 버렸다.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 이사진도 소기의 목적인 초대 국장의 퇴진을 이루었기에 굳이 그것을 막으려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던 초대 국장의 기획취재팀마저 실패한 전례가 있는데 어떤 미친놈이 제 목을 걸고 그런 시도를 하겠는가라고 판단했을 것이리라. 그들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고 지금껏 아무도 기획취재를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뭐, 지금까지겠지만 말이다.

기획취재 허가를 따내기 위해 내가 할 일은 절차상으로만 봤을 때는 간단하다. 기획취재를 하려는 목적과 간단한 일정 등을 정해진 양식에 맞춰 작성하고 직속상사의 승낙 서명과 함께 기획실에 제출하면 된다. 단, 이 건은 암묵적인 의미로 일종의 사직서로 인식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승낙한 상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대머리 털보가 쉽게 승인해 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내 결심 하나만으로는 일처리가 끝나진 않는다는 얘기다.

오후가 돼서야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듀이의 사나운 눈초리가 등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열심히 눈에 힘주고 있으라지. 조만간 그 눈이 튀어나오게 해 줄 테니. 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듀이의 눈알이 튀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속으로 웃었다. 이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기획취재 양식을 채워 넣어갔다.

필요한 내용을 모두 채우고 난 후 한 번 더 점검해 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에 옮기는 것 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대머리 털보를 바라보았다. 입사하고 저 인간을 향해 진심으로 웃어본 적이 있던가. 아마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맘껏 웃을 시간이다.

각오를 하고 듀이 앞에 글로 빼곡히 채운 기획취재 지원서를 들이밀었다. 대머리는 다른 세계의 물건을 본 것인 양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소인배는 늘 제 잣대로 잴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다들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슬슬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듀이의 두뇌가 안쓰러워 내가 직접 말을 꺼내기로 했다. 악감정이 있는 것은 그의 인격이지 불쌍한 그의 두뇌는 아니니까.

“기획취재 원서입니다. 가능하면 승인란에 서명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안 해주셔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짐은 이미 다 정리해 놓았거든요.”

내 말이 끝난 다음에도 듀이는 한 동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금붕어인 양 입만 뻐끔거리는게 그의 상식 하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내가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동안 머뭇거리다 이내 비명이라도 지르듯이 듀이는 나를 향해 윽박질렀다.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지금 니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기나 해? 이건 사표나 마찬가지라고. 이따위 짓을 하면 너는 물론 우리 부서사람 전부가 피해를 보게 돼. 도대체 언제까지 생각 없는 짓을 하며 살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일거에 폭발했다. 아무런 희망 없는 현실에 꼼짝도 못하는 나 자신에게 기회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늘 이렇게 발목을 잡는 소인배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나도 두려워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였고 그렇다고 멋대로 간주하였다. 아직 사회 경험이 없고 어른과 선배들의 눈을 통해 사회의 여러 가치를 판단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순수한 시절. 그 때 그들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자신들의 기준과 의견이 사회의 통념이라 말하며 나에게 그것을 수용하도록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 때마다 나는 늘 안전주의의 길로 들어섰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와 요행을 기대하는 마음뿐. 이제는 그만 이 악순환을 끝내려고 한다. 나는 듀이를 향해 최대한 정성을 들여 미소를 짓고 말했다.

“잘 알고 있어. 너 같은 겁쟁이는 평생 못할 일이지. 차라리 사표를 쓰면 썼지 이런 건 못 할 거야. 늘 같은 일상에 길들여져 평생 개미로 살아갈 너보단 리스크 있는 도박을 택한 내가 더 현명하다는 것을 1년 후에 깨닫게 해주마. 난 반드시 이 건을 성공시키고 돌아올 거다. 그때까지 자리보전 잘하고 기다리고 있어. 대머리 털보 녀석아.”

기대했던 대로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진 못했지만 듀이의 얼빠진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나는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2년간 일해 왔던 직장을 나섰다. 기획취재 원서는 듀이가 승인해주지 않을 것을 대비해서 기획팀에 별도로 제출해 놓은 상태다. 어차피 듀이가 승낙했어도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무슨 수를 써서도 막았을 터이다. 사실상 나는 사표를 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모든 것은 결과로 뒤집을 수 있다. 나의 취재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영락없는 사표로 끝나겠지만 아무도 인터뷰한 적 없는 기인과의 인터뷰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기획취재 원서로 바뀌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승부를 해보자. 내 직업과 소명을 건 승부 말이다. 나는 바로 그 동안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여 준비해놓은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였다. 행선지는 물론 하와이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다. 바로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