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nie Volter Mar 07. 2018

트라우마 벗어던지기

학창시절 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체육시간이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운동신경이 없던 나는 체육시간 때 어려운 동작을 배우고 친구들 앞에서 연습할 때마다 큰 공포를 느꼈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누적된 공포는 내가 남 앞에 서는 것과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극도로 위축되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남앞에서 준비되지 않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할 때 공황장애에 가까울 정도의 공포를 느끼곤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 두려움은 졸업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학에 가서는 체육시간 같은 것은 없으니까. 허나 이 트라우마는 비단 체육을 넘어 내 삶의 전반을 잠식해 들어갔다. 운동을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 배움에 대한 두려움은 전공, 자격증, 발표 등 모든 분야로 전염되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학습하는 것을 피하는 형태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쌓인 트라우마는 서른 중반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나의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대한 선제적 공포, 다른 사람과 깊이있는 대화를 기피하는 버릇, 익숙치 않은 장소와 문화에 대한 편견 등 다양한 형태로 내 삶의 확장을 제약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힘든 것이 인생인데 나의 트라우마는 그 단점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벤쳐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을 하면서, 시나 소설 등의 글쓰기를 하며 인생을 역전해줄 한방을 갈급하며 질주했던 것은 사실 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덮고 새로운 삶으로 리셋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려움과 실패로 범벅이 된 종양같은 인생의 암덩어리를 치료하는 것을 포기하고 성공이라는 화려한 빛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꿈꿨다. 허나 상처와 고립으로 굳어져가는 내 머리와 손에 닿을 성공은 없었고 이제 와서야 나는 내 안의 상처를 직시하며 메스를 데려한다. 

스무해가 넘게 썪어 굳어진 환부에 칼을 긋고 그 안에 곪아터진 암덩어리를 빼낼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가도 혈관 하나하나를 바로 세워 피가 돌게 만들 것이다. 이직 후 과도기 속 안정기에 들어선 지금이 다시 없을 좋은 기회다. 외부가 아닌 내 속에서 올바른 인생을 영위하는 리셋버튼을 찾아 누를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만난 초능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