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딱 두 번 초능력자(?)를 본 적이 있다. 한 명은 내가 남자중학교를 다닐 때 동급생으로 개미, 파리, 모기 등의 모든 해충이 그에게로만 모이는 매우 진귀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덕분에 한여름 벌레가 무성한 야외에서도 그와 함께라면 나는 벌레들의 공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같이 가자는 그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늘 그와 떨어져 있으면 됐으니까. 벌레가 싫었던 그는 다행히 공부에 재능이 있어 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살고 있다. 그와는 아직도 종종 연락을 하는 중이고 어렸을 적 초능력은 본인말로는 이제 없어졌다고 한다. 재밌는 초능력자였던 그와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아 서두로 올렸고 오늘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내가 최초로 만난 초능력자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를 만난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부모품이 진하게 남아있던 유치원을 떠나 처음으로 또래 집단을 만들기 시작하는 그 때, 한 아이만 유별나게 혼자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 녀석이 한 편으론 귀엽고 한 편으론 신기하여 나는 그에게 여러차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무시와 냉소로 대응하던 그 녀석도 당시 뻔뻔함과 무신경으로 점철된 나의 오지랖에 몇몇 질문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게 답변을 하곤 했다.
그렇게 그와 나는 책상 하나 사이에 두고 서로 잊어먹지 않게끔 왕래를 하였는데 내가 그의 초능력을 보게 된 것은 학기말 시험때였다. 당시 초등학교 전과를 외운만큼 좋은 성적을 내던 시험이 횡행할 때였기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열심히 외운 내용을 문제에 풀어내느라 끙끙 앓고 있었는데 그 녀석은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모든 문제를 풀고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를 신기하게 여겼지만 미리 선행학습을 했겠구나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그 다음 시간에도 그는 어김없이 5분 안에 모든 문제를 풀고 낮잠을 잤다. 그렇게 총 5일간의 시험이 끝났고 결과를 보고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것이다.
그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귀찮아하는 그를 무시하고 옆에 앉아 숙제를 하였는데 그는 속성으로 문제를 풀고 늘 다른 짓을 하기에 바빴다. 나중에 그와 얘기하여 그의 놀라운 재능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정해진 선택지에서 반드시 정답을 찾아내는 그의 유별난 감각능력이었다. 사지선다이든 오지선다이든 그는 선택지 속에 정답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그에게 물어보니 그는 문제를 읽어보면 출제자의 의도를 알 수 있고 출제자가 정답을 숨기거나 일부를 틀리게 표현할 때 출제자의 생각의 흐름이 꺾이는 것을 감지하여 그 흔적을 짚어낼 뿐이라고 하였다. 출제자의 의도가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답안 또는 출제자가 서술한 글 속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꺾이는 지점의 답안을 고르면 그것이 곧 정답이라는 것이었다.
4지선다형에서 3개의 옳은 답과 한 개의 틀린 답을 낼 때 출제자의 흔들리는 미세한 호흡을 감지할 수 있는 그는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객관식 문제에서는 항상 만점을 받았다. 이 능력은 비단 시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RPG 게임과 카드게임 등 선택형 문제라면 뭐든지 적용되었다. 그는 항상 정답만을 찾아내었고 사람들은 그런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였다.
놀라운 그의 능력이 나는 부럽고 신기했다. 그에게 그 능력을 갈고닦아 사람 마음도 읽으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생각따위 알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였다. 살아있는 상념의 범벅은 지저분하고 수시로 바뀌어 그의 고요한 마음을 더럽힌다고 얘기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급우와 얘기하는 것마저도 싫어하였다. 그가 졸업할 때까지 마음을 터놓고 지낸 친구는 나 하나 뿐이었으니.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의 초능력은 여전할까.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싫어했던 그, 여전히 세상에 벽을 치고 살고 있을지,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변했을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찾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