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들을 당신들에게 보낸다

병아리 신입 사원입니다

by 그래도봄




문을 두드린 딸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내밀었다. 종종 나눠 보는 소설도 아니고 시집도 아니었다. 그 애 방 책상에 얼마 동안 놓여 있던 책 제목은 봤었다. 한밤중에 골똘히 읽는 모습도 봤다.


나랑 내 친구들, 몇 살 더 많은 우리 또래들 얘기야, 관심 있으면 한번 읽어봐요.


그래? 집안에 90년생들이 둘이나 이미 왔고 옆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새삼 또 90년생이 오고 있는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사람들이 자기가 서른 살을 앞두고 있을 때 〈서른 즈음에〉 노래를 듣듯, 마흔 즈음에 《두 번째 스무 살》을, 이제 다시 시작이라며 책을 읽듯, 자기들 이야기를 거울처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읽고난 후 누군가에게 읽어보라 권하는 것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현재 90년대생 두 딸은 목하 고통스런 청춘의 복판을 지나고 있다. ‘찬란하고 반짝이고 빛날’ 아름다운 나이, 푸른 나무 잎사귀나 꽃처럼 싱그러운 나이지만 윗사람들에게서 받는 험한 말들에 베이고 부정적인 눈빛에 치여 얼굴색이 흐려지고 있다. 선배와 상사들의 이해불가한 행동에 돌발적으로 맞닥뜨리는 일은 다반사, 반짝이는 눈빛은 피로로 뭉개져 귀가하는 중이다. 물 만나러 나갔다가 돌연 땡볕에 내던져져 마른 흙범벅이 된 채 바스락 말라가는 연체동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까.


어떤 날은 눈물을, 어떤 날은 분노의 절규를, 많은 날들을 기절하듯 피로 증세로 쓰러졌다. 그런 와중이었으니 개인의 특성과 상황이 천양지차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저 일반적으로 뭉뚱그려 한 구덩이에 집어넣고 성글게 뭉쳐놓은 자기들, 90년생들의 어떤 항변이라도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지 않았을까. 좀 더 어른인 사람들이 자기 또래의 표정을 담아주지 않았을까 간절히 기대했을 것이다. 자기들이 서 있는 땅의 기반과 위치와 경사도를 보여주고 어쩔 수 없이 현재 새기고 있는 삶의 문양을 속속들이 다룬 글에서 모종의 이해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 마음을 내가 알지, 어루만져 보듯 《90년생이 온다》는 책을 읽었다. 딸이 권한 거니까 그 애 말 듣는 것처럼 더 꼼꼼히 봤다. 어느 날은 아이 방에 쌓아놓은 책 더미 중에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란 제목이 달려 있는 걸 봤다. 뭐지? 이 중학생 자존감 증진 표어 대회에 출품한 것 같은 심플한 제목은? 들춰 보는 내게 저도 민망한지 웃으며 대답한 책을 산 이유인즉슨 그저 ‘제목에 끌려서’라고 했다. 두 딸 모두 각자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인데(신입이니 당연하지만) 위로 첩첩사다리 같은 선배, 사수, 상사들 공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다정하게 해주는 이들이 드물다고 했다. 순수하게 일적인 측면에서라도 친절하게 가이드를 하거나 예의 바르게 대해주는 사람이 손에 꼽다 보니(거의 없으니) 스스로라도 응원해주고 싶었다는 거였다. 나한테 도무지 잘해주는 이가 없으니 ‘일단. 오늘은. 나에게. 잘하자’고 위안 삼아 산 거라는데 참 ‘오죽하면 여북할까’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잘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그렇게까지?


‘병아리 신입 사원입니다’라는 노란 명찰을 달고 일을 시작해 이제 몇 년이 지난 큰딸은 종종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퇴근했다. 일하는 도중에도 참아보려 해도 눈물이 쏟아져서 당황한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일의 특성상 대면 업무를 하느라 고객이 내뱉는 무례한 말과 이해불가한 삿대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떨다 오기도 했다. 무턱대고 목소리를 높이고 선후좌우를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방향 모르고 퍼붓는 분노 어린 태도에 인류애가 사라진다고도 했다. 오죽하면 ‘화의 민족’ 같다고 느꼈을지.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는 선배와 상사에게 서운해하고 직원의 안위를 보호하지 않는 회사 조직의 현실을 답답해했다.


어느 날은 상사들이 자기를 두고 이유 없는 험담을 하는 걸 우연히 듣고는 며칠을 가슴 아파했다. 뒷소리나 험담의 내용이 어이없이 불합리하고 일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더 크게 속을 상했다. 인턴과 계약직을 거쳐 어엿하게 직장에 들어간 둘째도 일을 시작하던 첫 해는 각종 병증을 앓았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긴 시간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속병이 여러 가지 찾아왔다.

종종 코피를 쏟고 눈물로 베개를 적셨는데 고통과 슬픔은 거의 다 회사의 인간관계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남들만큼 애써서 바늘귀만큼 좁고 가느다란 취업의 문을 뚫고 들어간 딸들이었다. 가족과 친구 외에 새로 관계 맺은 사람들 앞에 제 이름으로 또렷이 서서 일하고자 애를 쓰고 노력하는 성실한 딸들이 기대를 꺾은 목소리로 묻곤 했다.



“엄마도 회사 다닐 때 그랬어? 후배들한테 막말하고 면박 주고 앞뒤 없이 맘대로 판단하고 그런 적 있어? 일 말고 개인적인 이슈로 사람을 괴롭힌 적 있어? 나는 선배 되고 승진하면 절대 안그럴 거야. 정말 신입에게 잘해줄 거야. 납득할 수 있게 말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진 못했다. 나도 나쁜 선배이고 상사였던 적이 분명 있었다. 후배들이 내가 한 나쁜 말들을 삭이려고 몇 시간씩 울며 걷고 밤잠에 악몽을 꿨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내 불합리한 언행으로 인해 상담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일하던 당시엔 몰랐었다.


남아 선호사상(사상이라니? 남아만을 좋아하는 행태가 무슨 고귀한 사상에 속하는 것이 아닐진대)에 찌든 구세대의 마지막 인물들, 즉 60년대생들이 90년대에 아이를 낳았다. 문리는 트였다 해도 가부장적인 사고를 벗지 못한 다수의 60년대생 어름의 남녀들은 그즈음 태아 감별을 해서 여아들을 소리 없이 없앴다. 또 그즈음에는 팔자 세고 성격이 드셀 거라며 출생연도의 동물 띠를 들이대며 양수 검사로 성별을 알아내 여자아기들을 태어나지 못하게 했다. 태아일 때부터 여자이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90년대 쯤의 성비는 심각하게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토록 엄혹하고 끔찍한 페미사이드(여성 살해)의 시대에 기적적으로 태어난 90년대생 딸들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어이없게도 도리어 ‘귀한’ 존재가 되었다. 여자가 기록적으로 꽤나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들은 어린 시절부터 차별적인 별 소리를 다 들었다. 결혼하면 끝일 텐데 여자애가 뭘 그리 열심히 공부하나? 같은 말. 딸을 둘 둔 나마저도 무지한 소리를 다 들었다. 딸 둘이라 좋겠어요, 같은 말.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이다음에 직장 갖고 집 사고 자식 부양할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아들은 다르거든. 한 집안의 가장이 될 텐데, 얼마나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몰라. 믿어주고 방목하듯 딸들을 자유롭게 키운다는 얘기라도 할라치면 딸이라서 공부 안 시키고 슬렁슬렁 키운다는 애먼 소리까지 들었다. 그래서인가. 딸들은 개미처럼 성실하게 말처럼 오래오래 열심히 달리며 자라났다.


‘알파 걸’ 세대란 소리를 들었고 여자라서 공부를 대충해도 된다거나 나중에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꿈결에도 해본 적 없이 20년 넘게 열심히 살아왔다. 여느 아들과 다를 것이 한가지도 없었다. 새벽까지 도서실에 앉아 엉덩이가 네모가 될 정도로 공부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인턴 활동과 취업 스터디를 거듭했다. 스펙을 경쟁적으로 쌓아야 하는 시대라 벽돌 같은 수험서를 수십 권 사들였고 수백 장의 자기소개서를 고쳐 썼다. 정장 구두를 싸안고 몇백 리를 달려가 면접 위원 앞에 섰다. 정자세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몇십 번이나 똑바로 자기를 소개했다. ‘커피 타라면 타 올 거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아이를 낳고도 회사에 다닐 생각이 있느냐?’ 같이 압박 면접을 빙자한 차별적 언사의 면접 질문에 분노하지 않고 대답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했다.


1990년대에 386세대로 불리다가 세월이 흘러 586이 된 엄마, 아빠들이 한 달에 한두 번씩 부고를 받아 장례식장에 문상을 다니는 동안 요양병원에서 늙고 병든 부모를 붙들고 중환자실을 오가는 그때쯤에야 천신만고 끝에 사회로 나갔다. 그렇게 맞은 첫 사회가 지금 이 사회다. 30대 후반의 선배와 40대 어름의 상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저 90년대생들, 신입 병아리를 이끌어주고 회사일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으면 좋겠는 지금 이 사회 말이다. 딸들은 그즈음 변호사 채용 인턴십 프로그램 〈신입사원 탄생기-굿 피플〉을 홀린 듯이 보았다.

제 또래 남녀인턴의면접 태도, 옷차림과 표정의 굴곡, 일할 때의 행동과 동료들의 관계를 안투지배할 듯, 아니 안투지화면, 뚫어지게 바라봤다. 인턴이 실수를 하거나 능력 발휘를 못해 속상해할 때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동병상련과 공감의 맞장구, 응원을 거듭하면서 멘토로 나오는 선배 변호사들의 태도와 평가까지 눈여겨보면서 자기 회사의 상사를 떠올렸다.


우리도 언젠가는 선배가 되겠지, 상사가 되겠지, 좋은 어른이 될 거야, 다짐을 거듭했다. 90년대생들의 상사는 이제 우리 또래보다 훨씬 젊다. 내 딸들 또래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나보다 더 젊고 어리다는 게 모골이 송연하다. 하긴 내가 요즈음 일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마저 또래가 아니라 더 어리고 젊다. 그들은 사회의 중심 같은, 허리 자리를 맡은 이들 이다. 십몇 년 전 X-세대로 불리던, 트인 데다 자유롭고 개성 있는 것으로 유명했던 세대의 사람들이다. 《90년생이 온다》는 책에 나온 대로라면 간단한 걸 좋아하고 ‘병맛’을 즐기고 재미있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솔직한 태도를 몸에 두른 밀레니얼 신인류를 열심히 키워 보내는 내 마음이 이리 간절하니 부디 환영과 환대는 아닐지라도 적대와 박대는 아니기를. 공정과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칭찬은 아니어도 괴롭히지는 않기를.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_ 권혁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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