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봄 Apr 19. 2022

글쓰기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①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할 때 치유는 시작된다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는 제우스가 흙을 빚어 만든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그녀가 인간 세상으로 가져간 상자는 이율배반의 원리를 가지고 있어서 열 수 있는 뚜껑은 있지만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다. 그러나 판도라는 호기심 때문에 그 상자를 열고 말았다. 그때 열린 틈으로 인간 세상의 모든 불행과 재앙이 쏟아져 나왔다.


열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열 수 없는 것, 그것은 마치 인간의 입과도 같다. 인간은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지만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의 긴 목록도 가지고 있다. 미움, 시기, 질투, 경쟁심, 원망 같은 것들을 말해서는 안 된다. 고통, 절망, 슬픔, 분노, 수치감 등도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외로움이나 우울감 등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므로 거부당한다. 문화에 따라서는 자기를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도 문제가 되며, 심지어 피해자임을 폭로하는 것도 제지당한다. 어쨌든 우리는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을 말할 때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발설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이발사는 결국 비밀을 지키지 못했고, 인간의 육체를 얻는 대신 말하기를 포기한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벙어리됨의 상처를 공감한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아픔이다.


나도 부모지만 부모들은 말을 너무 잘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나쁜 것과 좋은 것, 잘못한 것과 잘한 것, 자신의 실수에 대한 변명도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데 선수다. 자신의 슬픔, 괴로움, 분노, 미움을 합리화해서 아이에게 털어놓는다. 뿐인가. 부모는 모든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데도 선수다.


“엄마인 내가 불행한 건 네가 내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야”
“아빠가 화내는 건 네가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면 아이들은 그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이나 기대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억울한 오해도 있을 테고, 변명하고 싶은 사실도 있을 것이며, 원망과 슬픔도 느꼈을 것이다. 엄마, 아빠 앞에서 입을 다물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큰 불편과 괴로움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슴속에 말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그러니까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



누구나 간절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누구나 간절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인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중 얼거린다.


“말할까, 말까. 말하고 싶다. 아니, 그랬다가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게 된다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입 밖으로 빠져나온 불행의 언어들이 나를 단죄한다면?”


급기야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상담자와 치유 프로그램, 혹은 종교단체를 찾아가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얘기, 상대방이 지루해할까 봐 꺼내기 힘든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망설인다. 나의 말이, 그런 말을 한 내가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렇게 망설이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야 했고, 인간의 고통도 발설되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말과 글, 그리고 몸짓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다. 내면의 고통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너무 오래 갇혀 있으면 결국은 부패해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압이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 어떤 내용이라도 말하고 싶다면 말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말이라면 혼잣말이라도 상관없다.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할 때 치유는 시작된다.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_ 박미라 지음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글은 저마다 절실한 이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