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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봄 Apr 19. 2022

글쓰기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②

편견 없이 해석 없이 나를 돌아보라




나는 받아들였다.

이것은 내가 가야 할 길의 일부, 내 여행의 일부라고.

더 이상 고통과 싸우지 않고,

그것이 왔다가 가는 것을 다만 응시할 뿐이다.

마야 트레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때, 사람들은 일기장을 펼쳐 들거나 인터넷의 여러 게시판에 들어가 글을 쓴다. 온갖 생각들이 메두사의 머리칼처럼 제각기 꿈틀거리며 자라고 엉킨다. 난관에 부닥쳤거나, 내면에 숨어 있던 민감한 심리적 상처가 도졌기 때문에 그와 연관된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향한 격정적인 감정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 같거나 신체의 어느 한 곳에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긍정적인 감정일 때도 있다. 가슴 부푸는 시작, 희망적인 가능성, 타인의 배려나 사랑 같은 걸 느낄 때도 가슴이 벅차올라 가만히 있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홀가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쉴 새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생각을 안전하게 정리해보고 싶을 때, 우리는 자기 안의 것을 하나하나 꺼내서 서류함에 정리해 넣어두듯이 글을 쓴다. 수없이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과 기억들을 목록으로 만들어도 좋다. 글로 기록해두면 잊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실제로 기억과다증 환자를 글쓰기로 치료한 연구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글을 쓸 때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화의 상대는 일기장이나 나만의 블로그 또는 내면 깊숙이 감지되는 어떤 존재이기도 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고통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외로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기게 되면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다음 단계로 생각이 발전하는 것이다. ‘자, 그래서 내 고민의 핵심이 뭐지? 근본적인 문제가 뭐지?’ 그걸 찾아내고 나면 아마도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라고 묻는 단계가 올 것이다.



직면하면 오히려 담담해진다


글쓰기의 중요한 치유 기능을 몇 가지 꼽는다면, 생각을 단순화하기 위한 기록, 즉 내 밖에 보관하기가 그 첫 번째이며, 두 번째가 내면과의 대화다. 세 번째로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아주 솔직하게 만든다. 그림이나 사진, 동영상으로도 나를 기록할 수 있지만 글쓰기만큼 내면을 낱낱이 기록할 수 있는 매체는 없다.


글을 쓸 때는 카메라 앵글을 의식할 필요가 없고, 또 그림처럼 해석이 난해하지도 않다. 상담자 앞에서 눈치를 보며 고민을 털어놓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담자의 입장이 될 필요도 없다. 종이 앞에 홀로 앉은 나는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 나를 지면에 완전히 쏟아놓고 고정시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글이 갖는 특성이다. 그래서 글로 참여자들과 만날 때는 신뢰의 시간을 오래 가질 필요가 없다. 몇 회기 만에 그들은 글을 통해 과감하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다.


글쓰기의 네 번째 치유 기능은 바로 거리두기다. 참희한하게도, 직면하게 되면 오히려 담담해진다. 피하고 외면할 때는 한없이 두려웠는데, 고개를 돌려 똑바로 쳐다보면 오히려 견딜 만해진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도 글로 쓴 뒤에 읽어보라. 어느새 나에게서 조금 더 멀어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멀어진 만큼 견딜 만해졌다면 이번에는 같은 일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글을 써보라.

좀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늘려 쓰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일에서 초연해진 자신을 발견할것이다. 그때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저 종이 위에 기록된 사건일 뿐이다.


그렇게 반복해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자신을 보게 된다. ‘나를 본다’, ‘나의 마음과 상태를 관찰한다’는 것이 글쓰기가 가진 다섯 번째 치유 기능이다. 마음과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 신체에서 경험하는 일을 낱낱이 글로 기록한다면 그 순간 보는 행위가 일어난 것이다.


글로 쓰면서 보는 것은 가만히 멈춰서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은 자주 집중력을 잃고 휘청인다.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집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들어와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혹은 멍해지고 졸음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집중력이 오래 지속된다. 오래 집중하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앎, 즉 ‘통찰’이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 더 완전한 알아차림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보는 체험’이 있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글로 쓰인 나를 본다. 아, 나는 나 자

신을 이렇게 글로 표현했구나, 하는 앎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뿐인가. 그 글을 읽는 지금 자신의 태도와 심정도 보게 된다. 어느 날은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던 내용이 어느 날은 슬프게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읽을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_ 박미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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