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라는 자격지심

없는 사람에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by 그래도봄




그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지하에 살았잖아,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무 가난해서 으흐흐흑… 아빠 사업이 망해서… 우리가 꽤 잘 살았거든… 으흑흑흑흑.”


그녀 A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레퍼토리를 읊으며 알코올로 한층 배가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타고난 금수저 아니고는 누구에게나 집안의 흥망성쇠에 얽힌 숨겨둔 이야기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고,그런 이야기는 뭐든 울 거리 하나쯤 찾아서 결국 한바탕 울고 나야 끝이 나는, 거한 술자리에 딱안성맞춤이다.


“말도 마. 내가 더해. 우리 집 얼마나 못 살았는데 으흐흐 흑흑…. 엄마가 일을 얼마나 많이, 고생을 으흐흐 흑흑흑….”


옆자리의 B가 A를 따라 운다. 술자리에서의 눈물은 전염성이 강하다. 특히 돈 때문에 당한 설움이 묻어 있는 눈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웬만해서 울지 못하는 나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 억지로라도 눈물을 짜내 보려고 애를 쓴다. 울음 행렬에 동참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지난 가난의 역사를 떠올린다. 내게도 지하방의 기억이 있다. 엄마 아빠의 생고생, 돈이 없어 한없이 부자연스러웠던 대학 시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의 상당 부분은 그 가난의 기억에서부터 기인한다.


바람 끝에 더위가 묻어나고,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면 나는 슬슬 벌레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하루살이, 초파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벌레들. 바나나, 참외, 사과 같은 과일들은 웬만하면 먹지 않고 먹더라도 껍질이며 씨앗이며 먹고 난 후 잔해를 철저히 냉동하고 쓰레기들은 지퍼백에 밀봉했다가 많이 모이면 밀폐 쓰레기통에 넣어 단단하게 또 한 번 밀봉한다.


가능한 배달 음식은 시키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시키더라도 흔적 없이 깨끗이 씻은 다음 말려서 벌레들이 범접할 수 없게 밀봉하고, 하루에 한두 번은 뜨거운 물을 끓여 싱크대, 화장실, 베란다 벌레들이 번식할 법한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 들이붓는다.


조금만 주의를 소홀히 해도 자기네도 살아야겠다며 꿋꿋이 번식하는, 번식력이 유별나게 좋은 벌레들을 상대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런 나를 본 한 후배는 ‘언니도 참 평범치는 않아요. 그래서 글을 쓰나?’ 했다. 평범치 않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치 않게 됐나? 아마도 그 모든 것은 지하방에서 시작된 듯하다.


온 가족이 떠밀리듯 갑작스럽게 이사하게 된 지하방. 난생처음 살아본 그곳에 대한 기억을 거의 잊었지만, 벌레들에 대한 기억만큼은 아직 또렷이 남아 있다. 지하라 습해서 그랬는지, 다들 숨 돌릴 틈 없이 노동에 휩쓸려 다니느라 바빠서 집이 더러워 그랬던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몰라도 그 집엔 유난히 벌레가 많았다. 그 시절의 가난은 거의 지워졌지만 벌레의 기억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자기들도 살겠다고 질기게 번식하는데 이렇게 죽기 살기로 박멸하려 애써도 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벌레들이 날아다니거나 꿈틀대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치고 미치도록 싫은 기분이 든다. 그 시절의 가난만큼 말이다.


지하방에 살던 시절 엄마, 아빠는 늘 화난 채 지쳐 있었고, 어린 동생들은 방치됐고, 대학 신입생이던 나는 백화점이며 편의점이며 학원 강사에 과외까지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사는 게 지겨웠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한가. 나는 왜 남들처럼 너그럽고 관대하지 못하고 이리 억척스러운가.


대학교 입학식 때, 엄마는 비교적 새 옷이었던 엄마의 오리털 점퍼를 내어주며 굳이 입고 가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그게 그나마 당시 우리 집에서 가장 근래에 구매한 옷이었던 것 같다. 멋 내는 것엔 도통 관심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입학식에 가기 전까지는 옷 같은 건 아무래도 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엄마가 하라는 대로 엄마 옷을 입고 신입생 환영회를 갔는데, 막상 가보니 새로 머리하고 새 옷 입고 화장도 곱게 한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들을 보며 나만 좀 이상한 어떤 동떨어진 세계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 않는 엄마 옷을 입고 간 신입생 환영회, 그 때문이었나? 아니면 가난을 감추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었나? 이후 나는 정말 무던히도 옷과 가방 액세서리를 사 모았다. (없는 처지에) 쇼핑에 미친 듯이 몰두했던 시절이었다. 학원 강사와 과외를 하며 받은 꽤 많은 돈을 거의 치장하는 데 썼다. 아르바이트비 그거 조금 생활비에 보태봤자, 끝도 없어 보이는 가난의 커다란 구멍은 메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더 큰 이유는 나도 남들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가난한 ○○이가 아닌 그냥 대학생 ○○이로. 가슴속에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을 한껏 짊어지고 있었으니, 그걸 감추기 위해서라도 그런 치장이 필요했겠지 싶다.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메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가난의 구멍도 언제 그랬냐는 듯 메워지고 그 시절 샀던 수많은 옷과 가방과 액세서리들을 내다 버리면서 생각했다.


‘의미 없이 돈을 벌었고 의미 없이 썼구나.’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알았다. 세상엔 나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대학 시절 내가 쇼핑에 몰두하며 아르바이트해 번 돈들을 허투루 쓸 때, 친구들과 배낭여행을 하며 세계 일주를 하고 그 경험을 자양분으로 해외에서 통용되는 자격증을 따 해외 취업을 한 친구가 있었다. 트랙터를 타고 전 세계를 돌며 세계를 배우고 한국을 알리며 자신의 세계를 정립해 돌아와서 젊은이들에게 여행이 주는 깨달음을 전하는 스타트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알지 못하는 분야를 배워 이것저것 자신의 능력을 키워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난 왜 한 번 시도해볼 생각조차 안 했나.’


쇼핑중독자가 돼서 버려질 물건을 사들이는 대신에 다른 세계를 보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을 늘렸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기억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인데 왜 의미 없게 썼을까? 좋은 기억을 얻는 대신 버려질 물건을 사 모으면서 왜 그랬을까.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의 무게를 갈수록 더 크게 느낀다. 명품 가방도, 옷도, 차도 사고 나면 잠깐 좋다가 금세 시들해진다. 다 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돈 써서 가장 오래도록 깊이 남는 건 추억을 만드는 일이고 능력을 키우는 일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쓴 경우다. 그렇게 쓴 돈은 우정으로 남고 인연으로 남고 뿌듯함과 충만한 행복감으로 남는다. 종국에는 무덤까지 가져갈 기억이 되는 것이다. 어렵게 시간, 노력, 체력, 자존심까지 죽이며 번 돈인데 이왕이면 길게 오래 깊이 남을 것에 쓰자.


그렇게 오래도록 남는 게 가득 차야 이 오랜 마음의 가난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쇼핑을 해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다면, 아직도 술자리에서 옛 가난을 빌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돈은 있으나 마음이 가난한 건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나는 자주 그랬다. 마음이 가난했던 시절에.



브런치_도서배너-001.png 이러다 벼락부자가 될지도 몰라 _ 지해랑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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