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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맘 Nov 17. 2019

[프롤로그] 반려견에 대한 나의 생각

 




어릴 때 강아지에 대한 나의 신념, ‘ 개는 개다!’

  

  벌써 40년쯤 전 이야기다.

  

   하루는 엄마가 장을 보러 갔다 오시는 길에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길을 가는데 자꾸만 따라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몰티즈와 포메라니안이 반반 섞인 듯한 믹스견 흰색 강아지였다. 며칠을 굶고 고생해서 모습이 지저분하고 초라했다.


  개 꼬리에는 피부병이 걸려 털이 하나도 없고, 속살이 드러나 울긋불긋 발진이 생겨 있었다. 동네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도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엄마는 개를 키우기로 하셨다. 매일 정성껏 피부병을 치료하니 생각보다 빨리 완치되었다. 몇 주 지나니 꼬리에서는 털이 자라났고, 잘 먹으니 몸도 매우 건강해졌다. 그렇게 우리 집에 살게 된 개의 이름은 그 시절 참 흔한 개 이름 중 하나였던 ‘쫑’이었다.

 

  가족들은 나무판자를 손수 재단해 개 집도 지어주었다. 건강해진 쫑은 마당에 풀어놓으면 고양이도 아닌데 마당에서 쥐를 잡기도 했고, 땅을 파서 갈비뼈를 묻어 놓기도 했다. 가끔 여름에 현관문을 열어 놓으면 집안으로 들어와 내방 이불속까지 기어 들어오기도 했다. 깜짝 놀란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던 기억도 난다.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서울 외곽의 평범한 2층 양옥집이었다. 쫑은 우리 집 보안을 담당했고, 식구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처리했다. 늦은 밤 밖에서 개가 짖으면 우리 집을 잘 지켜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든든했다. 동네 이웃집들도 그렇게 개 한 마리쯤은 집집마다 있었고,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다른 집 개들도 연달아 달밤의 늑대처럼 울어댔다.


  쫑은 암캐였다. 개의 나이는 추측할 수 없었지만 얼마 뒤 새끼도 다섯 마리나 낳았다. 강아지들은 너무 귀여웠다. 모두 하얀색 강아지였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20일쯤 지나니 강아지 다섯 마리가 뒤뚱뒤뚱 잘도 걸어 다녔다.  엄마 '쫑'을 닮아 털이 어찌나 하얗고 예쁘던지, 동요 가사처럼 그대로 ‘우리 집 복슬강아지'였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깐, 주변 이웃들은 우리 집 개가 강아지를 낳았다는 소식에 모두 데려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나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러라'고 약속하셨다. 나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슬펐지만 한 마리, 두 마리 떠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마침내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마지막 녀석은 정말 보내기 싫었다.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 쫑이 아이들을 모두 잃으면 얼마나 슬플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엉뚱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우리 집에 지붕 보수를 하고 남은 파란색 페인트가 있었는데, 찐득찐득한 페인트를 강아지의 등 일부분에 몰래 칠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하얀 털이 미워지니 왠지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예상대로 엄마는 속상해하시며 페인트를 닦아내려다가 가위로 엉겨 붙은 털들을 잘라 내셨다. 하얗고 예쁜 강아지가 털이 엉망이 되어 엄마도 이웃집에 보내는 걸 포기하시고는 그냥 집에서 키우기로 하셨다. 나는 몰래 페인트를 칠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엄마는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강아지는 우리 집에 남게 되었고, 그날부터 그 강아지의 이름은 ‘뺑끼’가 되었다.


  엄마 ‘쫑’과 아들 ‘뺑끼’는 우리 집에서 잘 지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쫑은 나이가 들어 어느 날 아침, 마당에 죽어 있었다. 아들 뺑끼도 목줄을 풀어놨는데 쥐약을 잘 못 먹었는지 죽어서 뒷산에 묻어 주셨다고 했다.

  

  그 이후, 우리 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았다. 엄마는 개와 사람이 사는 공간은 정확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개는 개다!’ 그것이 우리 엄마의 사고방식이자 나의 사고방식이 되었다.

 



지금 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5년 전 지금의 반려견 ‘그래’를 만나 집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개를 입양한 이유도 ‘개가 너무 좋아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늘 개를 사달라는 외아들에게 맞벌이라 안된다고 버티고, 버티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펫 샵에서 사 왔다. 처음 그래를 살 때만 해도 개는 쉽게 구매할 수도, 처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와 함께 많은 경험을 하며 개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려견이 우리 가족에게 주는 존재와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내 생각은 점차 변화되었다.


  그래를 보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릴 때 키우던 개와 지금의 개들을 비교해보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개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 답답한 실내공간에서 개의 정체성을 잃고 너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라고. 아파트에 살면서 맘껏 짖지도 못하고, 땅을 파서 뼈를 숨길 수도 없고, 쥐와 새를 사냥할 수도 없고, 아무 곳에나 맘대로 배설도 못하고, 중성화로 성에 대한 정체성을 잃거나 성대 수술로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가니 말이다. 애지중지 집안에서 키우는 개와 마당에서 본능에 충실하며 개답게 맘 편히 살아가는 개 중 어떤 개가 더 행복할까? 어떤 견주가 개를 더 진심으로 생각하는 행동일까?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며  많은 사람들의 사고가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문화도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애완견’의 개념으로 어린 자녀들이 원해서 개를 집에 들이는 사람들,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유별나지도 않고 평범한 그래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나의 경험담을 통해 반려견 키우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공유하고, 사람들이 반려견을 입양할 때 보다 신중하게 결정하기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래야 버려지는 반려견들도 적어질 테니까......


  개를 입양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좌충우돌 경험기를 읽고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는 기회였으면 한다. 반려견 입양에 대한 책임과 무게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인생의 동반자인 반려견과 함께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에 매우 특별한 경험과 가치로 기록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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