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않기로 한 이유
비가 온 뒤, 날이 맑게 개었다.
주말이 되고, 여느 때처럼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마차라떼를 마시기 위해 집을 나섰다.
카페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공원이 오늘 따라 유난히 북적였다. 아이들 방학이었다. 소리치며 뛰어 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로 간식을 준비하는 엄마,
같이 아이들과 공놀이하고 있는 아빠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잠시 벤치에 머물렀다.
‘해가 좋아서’
라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눈길은 자꾸만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엄마가 아이를 번쩍 안을 때,
아이가 “엄마!” 하고 달려갈 때마다,
그렇게 나를 불러주는 존재가 없는 것에 화가 났다.
질투가 났고, 괜히 심술이 났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괜스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저 안엔 내가 없다.’
부러움 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쓸쓸했고,
질투라고 하기엔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감에 더 초라해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안을 무너뜨렸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나는 한단어로 억눌렀다.
'시끄러워'
카페로 향하던 길을 돌아섰다. 그냥 조용한 곳으로 걷고 싶었다.
‘날이 좋아서’
또 한 번 중얼거렸지만, 그건 내가 스스로 만든 핑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안에 질투와 원망 자괴감, 부러움, 서운함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이런 초라한 감정들이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마음을 찌르고 다녔다.
나는 그런 파편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끔 답답할 때 들리는 인적 드문 호숫가에 도착했다.
한때는 생태 공원이었던 든, 녹슨 푯말이 있었고, 개발예정지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이었다.
공원의 소란과는 달리, 이곳은 늘 고요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백조 한 마리가 유유히 떠 있었다.
"오늘도 너 혼자구나..."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내가 호숫가로 다가가자, 백조가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마치 '또 왔어?' 하고 인사하는 것 처럼.
호수 가장자리에선 잘린 나무들이 쓸쓸히 놓여 있었다.
백조의 집은, 뜨거운 햇볓을 가려줄 나무가 없었고,
소나기를 피할 곳이 부족해 보였다.
그때 멀리서 공사 차량들이 건너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나무를 자르는 작업을 시작하는 듯 했다.
나는 백조에게 묻고 싶었다.
“백조야, 너는 왜 아직도 여기 있는거야?
너는 그렇게 큰 날개가 있는데,
더 크고 깨끗한 호수로 훨훨 날아가면 되잖아.."
그 순간,
백조가 내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것 처럼,
내쪽으로 등이 보이도록 돌렸다.
커다란 날개를 반쯤 펼치자, 그 안에 작은 생명들이 있었다.
아직 회색 털이 복슬복슬한, 제대로 헤엄도 치지 못할 것 같은 솜털처럼 연약한 새끼들이, 날개 속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 그래서 떠나지 못했던 거구나..'
백조가 그곳을 떠나지 않은 건, 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날개를 접고, 새끼들을 위해 남기로 한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건 지켜야 할 지금 순간 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날개를 세상으로 펼치지 않았고
자신이 품고 있는 세계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돌아가는 길, 다시 그 공원을 지나쳤다.
여전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 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들렸다.
소란스런 소리가 났다.
한 아이가 나무 조각상 위를 올라가려다 떨어진 것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다친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끄러운 게 아니라,
절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랑은 날개를 접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날개를 접은 백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날개를 가진 백조인지도 모른다고.
엄마는 항상 나를 재우고 나서 부엌 식탁에서 그림을 그렸다.
물감을 섞는 소리 사각사각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는 엄마가 날아가고 싶은 곳이 그곳이였는지 미처 몰랐다.
엄마의 손은 붓 대신 걸레를 더 많이 잡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드는 돈을 더 걱정했다.
'이것도 다 돈이야. 이럴 돈이랑 시간 있으면 장봐야지'
나는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쳤다.
날 위해 날개를 접은 엄마와
점점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안전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안부만 물으며.
엄마의 안전거리가 좁혀질때면
"제발 그만"
하며 상처를 줬다. 엄마의 그림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따뜻한 날개 품안에 있었으면서도..
'엄마도 날 위해 날지 못한게 아니라 날지 않은 거였구나'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가 그림을 멈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 그림 다시 그리면 안되?"
하지만 엄마의 손은 이미 관절염으로 굳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주 오래 전 엄마가 사준 곰 인형을 꽉 껴안았다.
엄마가 그리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는 울기만 했다.
나이 든 엄마는 더이상 나를 품어줄 날개가 없었다.
아이처럼 울고 있는 나를
더이상 품을 수 없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떤 날개는 날기 위해 존재하지만,
어떤 날개는 누군가를 품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아이를 안을 수 없다는 서러움만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품었듯,
내가 가진 날개는 엄마를 품을 수 있을만큼 자라 있었고
내 날개는 엄마를 위해 존재했었는데 미처 몰랐던 것 이었다.
우리가 가진 날개는 누구를 위해 접혀 있는 걸까?
내게 조용히 다가와 등을 보여주고 영감을 준 나의 백조.
제가 직접 마주한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너무 예쁜 장면이라 많이 부족하지만 꼭 글로 남기고 싶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