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착하니까"

서로 다른 계절을 건너는 중입니다

by 그래미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는 어떠셨어요?

저는 바쁜 하루를 끝내고
창가 난간에서 창문 너머 사람들의 하루를 바라보고 있어요.

이 동네 주택들은 마주하며 서 있고,
각자의 삶이 서로의 풍경이 되는 곳이에요.

누군가는 아이와 아내가 반겨주고,
누군가는 고양이에게 먼저 인사를 받고,
누군가는 친구와 장을 봐서 돌아오고,
누군가는 주차 후 묵묵히 차를 닦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보게되요.

각자의 세상에서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답니다.

요즘 저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조용히 무시하고, 당연하듯 요구하는 그런 사회적인 강요 같은것 말이에요

저는 조용하고, 일을 열심히 하고,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차피 착하니까"

그 말은 제게 폭력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도망쳤어요. 사람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요

어제는 혼자 조그만 식당에 갔어요
숯불 향이 배어 있는, 세월의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거든요.
따뜻한 숯불이 제게 조용히 용기를 줬어요.

‘괜찮아, 여긴 아무도 널 모르잖아.’

하지만 그 생각은 곧 틀렸어요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제가 도망쳐 나온 회사의 상사가 가족과 들어왔어요. 정말 우연이었어요.

아내와 고기 굽는 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났어요.
서로의 대화 속에 웃고 있던 상사의 모습이 그전보다 더 따뜻해 보였어요.
그 따스함이,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어요.

문득 저의 가족이 떠올랐어요.
제가 도망쳐 나온 그곳에도,
어느새 형제의 결혼으로 새로운 사람이 제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죠.
저는 없어져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저는 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식당을 나왔어요.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그냥 거리를 천천히 걸었어요.

불 켜진 창마다 서로의 온기가 담겨 있었고,
퇴근시간 서로의 문 앞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의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어요.
나의 빈자리는, 언제든 다른 온기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

가족 안의 내 자리도, 회사 안의 내 자리도 그렇게 쉽게 채워졌어요.
저는 점점 더 차가운 그림자 밑으로 밀려났어요.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도,
이젠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빠름이 내게는 차가움으로,
나의 느림이 누군가에겐 무관심으로 보였나 봐요.

나는 밀물일 때 다가갔고,

당신은 썰물일 때 물러섰죠.
그래서 마음이 엇갈렸고,

그래서 상처가 생겼어요.

상처를 안고 가족 곁을 떠난 후, 나만의 공간을 만났어요.
방 안은 겨우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였어요.
벽지는 약간 들떠 있었지만, 약한 스탠드 조명 덕에 잘 눈에 띄지 않아서 괜찮았어요.
방은 추웠고, 따뜻한 라면 국물을 양 손으로 감싸고 있었어요.
그 짙은 적막 속에 드디어 제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었어요.
'괜찮아?'

알고 싶어졌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려운 시험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나는 약해서 조용한게 아니고, 함부러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소극적인게 아니라 신중한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가끔은 무서워요.
내 편이 없다는것,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됬어요.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찾으러 온거 였어요.
나 자신을 찾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아픔, 어려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착하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든걸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들
알고보니 그들도 누군가의 인정에 목말라 자신만의 추위속에 살고 있었던 거에요.

나의 온 세상이 뒤집혀 있을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듯,
그들의 세상이 뒤집혀 있었던 거에요.

지금 너무 추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꼭 맞서 싸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굳이 마음을 열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우연히 맞닿은 서로의 별에서,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사람들이 예민한지,
왜 나는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지.

언젠간 서로의 리듬이 겹치는 순간, 같은 계절을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거든요.

저는 너무 멀리 왔지만,
이제 조금씩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어요.

다시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어."

라고 미소 지으면서 말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