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도 마음이 있다

서랍에 넣어둔 자격증의 의미

by 그래미

나는 회계사다. 아니, 그저 시험에 합격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여러번의 수술로 인해, 경력은 단절되었다.


아픈 와중에도 멈추는 시간이 불안했고, 수술이 끝나고 실밥도 풀지 않은 채 책상에 앉았었다.

그런 순간도 멈추지 않았던 나의 꿈은 그대로 끝이 났다.


이력서에서 나는 지워진 존재가 되었다.

경력이 없던 나를 아무도 찾지 않았다.

가리지 않고 150군데 넘게 지원을 했지만 경력 부족과 나이로 인해 결국 나는 내 자격증을 서랍에 넣었다.


다시 일하게 되었지만, 회계사가 아닌, '그저 숫자를 조금 더 보는 회사원'이었다.

숫자를 공부할때도, 나는 늘 숫자 너머의 것이 먼저 보였다.


숫자 하나에 담긴 사연과 희망

작은 숫자의 변화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늘 궁금했다.


나는 숫자를 올바른 곳에 놓아줄수 있는 직업이

힘이 없는 나도 다른 사람을 폭넓게 도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숫자는 사람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이고 특권이었다.


내 상사는 회계사 시험을 포기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억누르고 싶어 했고, 내 의견을 말할때 마다

"경력 있어?" "해본적 있어?"

라고 물었다.


또 내가 실수 할때면, 기다렸다는 듯,

"아 회계사 딴 사람 별거 아니네"

라며 사람들 들으라는 듯 말했다.


어느 날은 야근 수당 항목을 살펴보다 손이 멈췄다.

동료의 근무 시간이 2시간 30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사는 말했다


"30분은 없다고해. 1시간 밑은 다 절사하고, 2시간으로 처리해"


"과장님, 하지만 실제근무시간은 2시간 30분입니다"


내 말에 상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미씨가 경력이 많이 없어서 모르나본데 원래 다 그렇게 해

융통성이 없어, 회사 일이 그렇게 칼같이 되지 않아"


하지만 그분에게 그 30분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의 얼굴 한 번 더 보는 시간이라는 걸.

그 지급받지 못한 그 돈은 피곤한 길 따뜻한 커피 한잔의 위로가 된다는 걸.

'겨우 30분' 이라고 말하는 상사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물었다.

"직원 혜택이 2년 이상 근속자만 해당하는데, 1년으로 낮춰야 하는거 아닐까요?"


"회사 규정이야"


어떤 사람에게는 그 1년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보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가 "예민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내가 "잘난척 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내가 "완벽" 해야하지 않냐고 수군거렸다.

나는 상사의 텃새로 인해 점점 말이 줄었고, 마음은 점점 닫혀 갔다.


나는 숫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시간, 고통, 희망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 뒤에 숨겨진 사람을 보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회사 동료의 수습기간 통과가 미뤄졌다.

그녀는 일을 매우 잘하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매일 상사와 담배 피우며 밖에서 사적인 대화하던 사람들은 3개월안에 모두 통과됬다.

말 수가 적고 일에 집중했던 그녀의 수습기간 심사 미팅만 미뤄졌다.


그녀는 3개월안에 통과가 됬어야 했는데 8개월이 넘도록 야근을 해가면서도

상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졌다.

결국 잦은 야근으로 그녀는 많이 아팠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못 나온 기간동안 월급 삭감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잘못된 처리였다.


그녀는 과장님께 말했다


"과장님, 이건 잘못되었습니다."


"회사 방침이야, 어쨌든 수습기간 통과가 안된건 맞잖아"


하지만 이번엔 물러설 수 없었다.

그 동료는 월급의 30%를 빼앗겨야 했다.

그래서 동료는 나와 함께 인사부서와 사장님께 불공정한 사항을 따져가며 이메일을 썼다.


상사는 내용보다,

이메일을 보내기 전 자신에게 먼저 허락 받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 부분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용기를 냈다.

다행히 그녀는 정상대로 월급을 받았다.


그녀는 내게 커피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지금 상황에서 월급 30% 깎이는건 제겐 너무 큰 돈이었어요"


나는 웃었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경력이 많지 않아, 내 말에 힘을 많이 실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올바른 숫자를 찾은 기분이었다.


내 서랍속 잊고 있었던 자격증을 보며, 숫자를 공부한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들의 삶을 지키는 일, 완벽한 승리는 아니지만,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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