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메이드인 코리아
외국에서 지내던 시간들은 내게 끝없는 겨울 같았다.
이곳을 선택한 사람은 아니였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던 시간을 지내왔다.
하지만 이젠 가고 싶어도 너무 올라버린 서울 물가에,
가족들도 내가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 나는 어쩔수 없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거울을 보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집에 들어오면 거울을 애써 피했다.
끝없는 스트레스로 늘어버린 주름을 보기 두려웠다.
거울 앞을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사고 싶은 욕심도, 욕망도, 사야 할 이유도 몰랐다.
옷장을 열고 그저 눈에 보이는 세탁된 거면 입었다.
우울증은 깊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했다.
나는 누구고 왜 여기에, 이렇게 추운 겨울을 견디며 살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져갔다.
그러다 한국 사이트에서 뷰티 디바이스를 봤다.
쿠팡에 접속했다.
"로그인하세요."
로그인은 매번 실패했고 본인 인증은 되지 않았다.
본인 인증 위해 서류도 내봤지만 유효기간 1년은 금세 사라졌다.
한국 대표 사이트.
누구나 손쉽게 주문할 수 있는 것들.
하지만 나는 거부당했다.
그렇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기에 향수병이 심해져 한국에 왔다.
돌아온 한국은 낯설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한국은 그대로였지만 도시는 너무 바빴고
나는 그 속도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나 하나 들어갈 틈은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해외의 작은 집값으로는 도저히 서울 집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미래가 불안해, 나를 받을 수 없었다.
"수저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는 정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것 같았다.
휴가 한 번 가지 않고, 돈이 모이면 한국만 다니며 살았지만,
하지만 이제는 가족들도 나를 부담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나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오자마자 핸드폰을 개통했다.
사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내겐 탯줄 같았다.
그 번호가 나와 한국을 연결해주는 것 같았다.
은행 계좌를 열고 쿠팡에 접속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뷰티 디바이스는 결제되었다.
다음 날 새벽 이미 내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나 먼 여정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내 눈앞에 있으니 믿기지 않았다.
작은 박스를 열어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 작은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많은 로그인 시도를 했던걸까.
작고 가벼운 이것, 얼굴에 대니 따뜻한 열감이 올라왔다.
나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섰다.
오랜 세월 쌓인 주름, 낯선 얼굴이었다.
디바이스 뒷면에는 "Made in Korea"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 아이는 나랑 같은 태생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언제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
나는 그 글씨를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안녕, 나도 메이드 인 코리아야."
작지만 확실한 온기.
다시 숨 쉬게 하는 문장.
나는 거울 앞에서 너무 오랜만에 나를 바라봤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도 외국도 내 집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되찾는 일은 생각보다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이 작은 기기의 따뜻한 열기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