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깊이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여러사람이 다칠거에요"
상사가 말했다.
나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었다.
그리곤 상사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사무실 하얀 벽을 쳐다보며,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려두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릴 것 같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갔다.
서리가 내린 찬 공기가 춥지 않았다. 숨이 찬 사람처럼 목까지 올려둔 잠바 지퍼를 빠르게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구인공고마감"이었다.
그 공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생은 타이밍이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마치 내 말들처럼.
사무실로 들어가며, 아무도 나의 감정을 알지 못하도록, 평소보다 더 밝게 웃어 보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퇴근하는 사람처럼 책상을 정리했다.
노트에 적어둔 메모와 하고자 하던 업무 방향이 적힌 노트를 펜으로 그었다.
'그래, 야근 안 하고 좋지'
그런데도 나는 그저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방향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사무실 책상에 올려둔 보라색 텀블러 커피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 보라색 텀블러를 살 때 고민을 했다.
"텀블러 그냥 아무거나 사. 그거 사는 게 왜 오래 걸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중요했다.
매일 아침 나를 깨우고, 하루를 함께 버텨주는 물건에,
나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느리고 깊고, 의미가 중요한 나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회사에 의미를 붙이고 있었다.
타지에서 혼자 회사를 일구신 전 사장님처럼, 나도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던 걸까.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충성심이었다.
혼자 남아 야근을 하고, 쉬지 않고 일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했다.
그 모습이,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겐 가식이 되었다.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하는 길, 밤하늘 회색 달이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핸들을 꺾을 때마다 달이 따라왔다. 방향을 잃어버린 나를, 달은 놓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펼쳤다.
주인공 영혜도 틀에 박힌 세상을 향해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늘 나는 나의 보라색 텀블러와 한강 책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세상에서 정해준 틀안에서 나는 충분해야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되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