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인간은 언제나 내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선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고통을 솔직한 얼굴로 드러낸다
나를 넘어 먼 허공을 바라보는,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는
분노와 불안, 슬픔이 얼굴에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그가 내 앞에 섰다.
옷매무새를 다듬다가, 옷에 묻은 마른 분유자국을 옷을 비벼 털어낸다.
실핏줄이 터진 채 충혈된 눈을 마른 손으로 비벼본다.
어깨를 크게 올리며 숨을 깊게 내쉰다.
그는 전화를 건다.
답답한 듯 넥타이를 흔들어 느슨하게 하고 목소리를 정리한다.
목소리는 얼굴과 다르게 밝다.
"몸은 좀 어때? 퇴원하고 무리하지 마.. 오늘은 정말 퇴근 일찍 하고, 현이 데리고 들어갈게.."
그의 바지는 다릴 틈도 없고, 그의 신발은 흙과 먼지로 뒤덮였지만
마치 그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어 보인다.
아이가 정장 바지에 흘린 듯 굳어버린 음식조차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의 시선은 내 너머에 있는 하늘을 잠시 바라본다.
눈에 남아 있던 물기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 선명히 빛이 났다.
그는 나를 통해 비치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넥타이를 고쳐맸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가 충혈된 눈으로 넥타이를 고쳐 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때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부장님이었다.
급하게 계단을 올라가다 내려오는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고 뛰어 나갔다.
부딪힌 사람은 흘린 커피를 닦지도 않은 채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는 한 발을 내딛으려다 멈췄다.
먼지로 뒤덮인 신발이 계단 위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창틀에 커피를 올려두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머니 생일..
이라고 쓰여 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오며 볼멘소리를 했다.
"아 나이는 나보다 많은데 직급은 낮아서 짜증 나. 괜히 불편해"
그는 못 들은 척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안타깝지만, 아직 경력이 부족합니다."
흐른 커피가 손등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휴대폰 화면은 아직 꺼지지 않은 채
'어머니 생일' 글자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메시지 창을 켰다.
'이번 달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라고 쓰고 지우다가 다시 쓰고 또 지웠다.
그 순간 엄마 목소리가 스친다.
"괜찮아.. 보내지 마.."
그는 화면을 켠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무엇을 남기려다 멈췄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아무 메시지도 보내지 못한 채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은 다시 조용해졌다.
커피 자국은 그대로였다.
나는 이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인간은 그 어깨로 다시 계단을 올랐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