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사람들

5. 할머니들의 수영

by 이강

#5.

수영강습신청하러 이 꼭두새벽에 갈 일이야..


새벽 5시 40분. 스프링처럼 일어나 튀어나가 보니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아직은 무겁게 가라앉은 아파트를 지나 실내등이 환한 시내버스를 보며 후드를 뒤집어 쓰고 어둠은 뚫고 걸으니 내가 마치 어둠의 순례자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 이 꼭두새벽에 벌써 내 대기표는 43번째이고 수련관 직원이 도착하는 7시부터 신청이 시작이라고 했다. 새벽6시경 바깥은 아직 어둠인 반면 수련관 1층 라운지는 새벽어시장 같은 활기로 가득했다.

앞 순번 대기자들은 다들 집에 갔다오는지 라운지는 비교적 한산했다.


“수영 신청 하러 온 겨??”


라운지 한 켠에 비치된 테이블 옆 의자에 앉으니 내 옆 자리, 어딘가 웹툰에서 본듯한 하얗게센 머리를 질끈 묶은 흰머리랑 아주 잘 어울리는 예쁜 비니를 쓴 할머니가 대뜸 말을 붙이셨다. 유쾌하고 시원시원해 보이는 할머니였다.


“네~아무래도 순번이 늦어서 허탕칠 것 같아요~”


“다들~ 새벽5시부터 수련앞에서 줄서능겨..좀 늦었지만 그래도 걱정마~ 될겨 ”


할머니는 가지고 온 미숫가루를 따뜻한 물에 개어 맛있게 드시곤 아...든든하다고 만족해 하시며 묻지 않은 당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집은 어디고 몇 번 버스를 타고 온다, 겨울이면 눈길에 걷기도 좀 힘들어도 그냥 온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매일 아침 5시면 버스를 타고 내려 20분 정도 지팡이를 짚고 수영장으로 온다, 당신 클래스는 8시 시작인데도 그냥 5시면 매일 오는게 습관이다. 여기 누구는 입원했는데도 수영장 돈만 내고 끊지는 않는다. 등 사시는 얘기를 술술 이야기하셨다.

“ 1시쯤 집으로 가~ 그 때 가야 며느리가 밥을 주그등~”

“ 아들은 내가 나가든 말든 신경안써..그러나부다 해.”

표정없이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할머니 말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 사이 무슨 사연이던 할머니에게 자잘구레한 것은 굽이굽이 인생길에 다 녹아지고 큰 기둥 몇 개만 남은 중심과 무심함이 편안해보였다.

인생 얼만큼 살면 저 자연스럽고 원망없어보이는 무심함에 이를까.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나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지나가는 경비아저씨에게 이봐아~~ 은제 데이트 해줄거냐고오~ 하며 우렁차게 말을 건네신다. 수영장 청소 아주머니들이 먼저 인사하며 다가와 인사를 하고 할머니는 따뜻한 차를 건네신다. 할머니에겐 이 곳을 점령한 통치자의 위엄이 보인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수련관 휴관하는 날 아니면 매일 수련관으로 새벽5시에 오는 건 벌써 7~8년 됐다며 여기에 새벽5-6시에 수련관오는 수영장 경력 10년 차 씩 되는 할마시들 천지라고 하셨다.


할머니들은 아쿠아 스포츠 강습시간이 8시여도 대부분 6시경 모여 배드민턴, 공원산책, 체육기구 돌리기 등으로 아침을 시작하신다.


새벽어시장같은 할머니들의 아침 풍경을 보며 왜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보다 더 오래 사시는 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덕담처럼 난 간신히 남은 자리 수영신청에 성공했고 매주 화목 이른 아침 수영장으로 간다.

이제 할머니들은 내 수영 개인 코치들이시다. 수영장엔 은둔 고수 할머니들 천지다. 숨을 이렇게 쉬어봐..평형할 때 다리에 힘이 없구먼~ 아니...왜 매번 이렇게 하는거야..숨을 이렇게 똑바로 쉬어봐..

나의 운동신경은 재주가 메주다. 평형이 되질 않아 나머지 학습을 많이 했다.

먼 발치로 내가 평형하는 자세를 봤다며 폼을 보니 이제는 된 것 같다고 격려해주시는 할머니, 아니야.. 앞 손동작을 물안에서 해야지 손이 왜 물 밖으로 나오냐 며 직접 시범을 여러번 보여주시는 할머니부터 운동신경 없는 내게 많은 할머니들이 격려와 지도편달을 아끼시지 않는다.

어제는 매번 내게 매섭게 지적하시는 할머니가 저쪽으로 이동하시자 옆 할머니가 슬쩍 내게 귀뜸하신다.

“지가 잘하는 줄 알고 저러는데 쟤도 내가 볼 땐 썩 잘하는 수영아니여..힘내~” 하고 눈을 찡긋하신다. 웃음이 난다.

나는 다른 시간대에 옮길 수 있었어도 그냥 7시 클래스로 간다. 할머니들과 인사하는 재미와 할머니들의 수영개인강습을 포기할 수 없다.

어김없이 아침 5시면 지팡이를 짚고 어둑시근한 어둠을 뚫고 출근하시는 비니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부디 오시는 길이 늘 평안하고 무탈하시길

물고기처럼 싱싱한 아침 운동이 늘 할머니들과 함께 있길 손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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