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난장판? 그게 모에요??
“ 샘~~저는요.. 음악할거 거든요. 지금은 가난해서 알바하고 엄마 혼자 부담하기 힘드니까 내가 돈 벌어서 보태야 되지만요, 혼자 가사쓰고 작곡 할 때 코모선생님 문학수업은 되게 도움되요.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수업하는 건데 ..그 시간이 되게 좋아요...”
“ 아... 그렇구나.. 코모 선생님? L 선생님? 코스모스 같이 갸날프고 호리호리 하신 분~ 아 그렇구나~~”
“ 일 끝나고 혹은 일 없는 주말에 집에서 저녁에 기타치고 이럴 때 너무 행복하거든요. 가사쓸 때 코모샘 수업에서 배운 대로 하면 내 마음이 표현되고 만져지는게 진짜 신기해요~”
“ 아~ 그렇구나~~” 석환이의 고등학교 1학년 답지 않은 생활인 같은 어른스러움의 원인이 가늠되면서 '이 학생에게 음악이 있어 참 좋구나' 라는 다행스러움과 우리 대화에 등장한 문학선생님에 대한 놀라움과 부러움이 섞여 나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그렇구나를 연발했다.
홀어머니, 동생 셋을 거느린 가난하지만 너무도 씩씩하고 생활력있는 석환이가 감동해마지않는 수업을 하는 문학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누가 이렇게 멋진 수업을 하는가?
교사는 수업으로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소신만큼 내 능력이 받쳐주진 못했지만 학교를 떠날 때 까지 수업시간은 늘 긴장되었다. 내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하나둘 씩 엎드려 자기 시작하면 교직 경력 20년 , 30년이 되도 등줄기에 땀이 바짝 솟는 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엎드려 자는 것은 오직 교사 탓 만은 아니다. 여느 직장처럼 학교는 직장이다. 학교에서는 옛날식 일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은 채 새로운 일이 생기고 옛일 위에 또 보태진다. 고등학교는 선택수업이 많아 교육과정은 해마다 바뀐다. 바쁜 일과를 치루어내느라 학교에 도착한 이상 다른 교사의 존재와 그 수업의 결을 감촉해보긴 언감생심이다. 그렇게 매일이 흘러간다.
어느 날 1교시 수업 시작전 아침 조회 시간 조용한 우리반 교실문을 누가 노크하더니 코모선생님이 나타났다. 우리반 녀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반갑게 “ 안녕하세요오오~~ 선생니이이이임~~”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한다. 선생님은 당일 수업 변경공지를 짧게 하고 교실 문을 나간다. 빠르게 나가는 코모 선생님 등 뒤로 학생들이 다시 일제히 유치원 병아리반 애기들처럼 순하고 예쁜 미소로 “ 안녕히 가세요~~ 선생니이이이임 ” 하고 드높은 합창을 한다.
저 산만한 머슴애들과 삼십대 후반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여선생님사이, 행복한 저 느낌은 뭐냐...신뢰로운 느낌 같은 저 달달한 것의 정체는 뭐냐...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때로 동물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한 교실에 원숭이, 나무늘보, 톰슨가젤, 심바, 스카, 하쿠나마타타, 양, 양서류, 참새, 하이에나, 치타, 하마, 벨루가, 동면 중 곰...들개들이 학급 마다 각각 다른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 느낌같은.
물론, 학교급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상황은 고2 남자 문과반에는 원숭이형들의 구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신임교사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여선생님들이 많아지면서 중견교사인 나는 만년 2학년 남자 문과반 담임으로 배속되었다. 2학년 남자문과반 담임은 이과반 담임보다 몇배 힘들다. 2학년 남자 문과반 담임의 급여는 이과반 담임교사보다 0.5배 높아야 한다고 침튀기며 주장하면 이과반 담임선생님들은 미안한 듯한 웃음으로 수긍하곤 했다. 문과반 담임들은 상처받은 원숭이들이 잠수타지만 않으면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내 옆반 담임선생님이 골절상으로 병가를 내면서 한 달 동안 그 반 임시담임을 코스모스 선생님이 하게 되었다. 그 반은 우리 반 보다 원숭이형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더 높았다. 그 반은 아드레날린이 광폭행진하는 상처도 받지 않는 씩씩한 원숭이들이 진짜 많았다. 그 반 학생들은 앉아 있질 못하고 대부분 다 일어서서 움직이고 여기 저기 왔다갔다 하고 큰소리로 떠들고 툭닥거리고 낄낄거리고 장난치고 ... 앉히는 데 10분 이상 걸리는 반이다.
코모선생님이 임시담임을 하는 어느 날, 그 날은 학급 대청소의 날.. 학급 대청소의 날은 교사는 기진맥진하는 날이다. 그런데 옆 반이 너무나도 조용했다. 이런 일은 없었다. 쟤들이 조용하다니.. 어디로 갔나 다들... 나는 옆 반 뒤꽁무니로 가서 빼꼼 살펴보았다.
교탁 위엔 조그맣게 조각난 걸레조각들이 보이고 코모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큰소리도 아닌 조용조용한 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길한다. 학생들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얼굴이 빛나고 반 전체가 교사가 서 있는 중앙 교탁을 향해 일제히 주의와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왠 일??난장판? 그게 모에요? 하듯이 그 날 너무도 멀쩡히 평소 그 반 답지 않게 학생들 모두가 각자 제 일을 조근조근히 평화롭게 학급대청소를 마치는 놀라운 풍경을 봤다.
저 나이대 학생들을 잘 알고 좋은 것을 잘 끄집어 낼 줄 아는 능숙한 교사만이 저럴 수 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어느 해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코모 선생님과 1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되었다.
석훈이를 감동시킨 수업은 당연히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준비, 교사모임의 힘이었으며 학생들을 잘 알고 좋은 것을 끄집어 낼 줄 아는 능숙한 힘은 자신을 잘 알고 자신에게서 좋은 것을 길어올리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코모 선생님은 방학이면 늘 명상센터나 수련원 등을 다녀와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욱 가냘퍼졌지만 훨씬 더 편안한 얼굴로 돌아와 우리들에게 명상 같이 하자고 권유하곤 했다. 어디서 이런 좋은 책을 알았나 싶게 좋은 책을 찾아 같이 읽자고 모임을 만들어 우리를 공부하게 하고 다른 관점을 갖게 했으며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못한 점은 눈감아주거나 문제삼지 않고 모르는 잘한 점을 찾아 코모선생님 곁에 있으면 나도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니 학생들을 바꾸지~~
어렸을 적 하도 엄마 속을 썩여 견디다 못한 엄마가 사춘기 코모샘 손을 잡고 집 옥상으로 끌고가 그만 같이 뛰어내려 서로 죽고말자고 울부짖던 엄마이야기를 들려주어 슬픈데 지금의 코모샘과 도저히 연결되지 않아.왠지 슬며시 웃음이 삐질삐질 나던 기억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보다 10년 어린 이에게 칭찬받고 용기를 얻었다.
코모샘 주위로 꼬여든 사람들은 직장스러운 친절과 예의로 가장된 고립되고 차갑고 거친 바다에서 서로가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숨구멍을 틔어주었다.
누구를 만나는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사귀냐는 것은 학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절로 알게 되었다. 독박육아와 가사로 찌들어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그냥 그런 직장인이 되어 버린 내게 코모선생님과의 친교는 한 때는 내게도 있던 것을 확실히 흔들어 깨워주었다.
코모선생님에게는 교사이면서 한 사람의 수행자같은 풍모가 있다. 늘 좋은 것을 주위에 퍼트리고 주변인의 가장 좋은 면을 봐주었다. 코모선생님이 있는 곳 마다 언제나 작은 등불이 커져 소통과 이해, 열림과 평화가 피어나는 걸 나는 경이롭게 목격했다.
한번도 잘난 척하거나 뻐김없이 늘 곁을 내어주는, 그럼에도 꾸준히 정진하기를 멈추지 않는 정갈한 수행자 같은 코모선생님의 모습은 내게도 숨어있던 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 좀 더 성숙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노력, 뭔가 본질적인 것에 가 닿고자 하는 안간힘 같은 것을 밖으로 꺼낼 수 있게 했다.
코모선생님에게 감사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말하는 거냐고 손사레를 분주하게 치겠지만 그래도 꼭 말하고 싶다. 그대가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