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 캐니언
호텔을 예약할 때 조건을 잘 비교하는데, 필자는 가격은 조금 비싸더라도 조식이 제공되는 옵션을 고르는 편이다. 미국 서부 여행은 식당이 없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야 하는 일정이 이어진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숙소에서 먹는 아침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최고다. 우리가 선택한 베스트웨스턴 호텔은 가격은 좀 비쌌지만 정말 10점 만점에 1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높다란 호텔 천장에는 브라이스 캐니언이 위치한 유타주를 상징하는 문양이 멋지게 걸려있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브라이스 캐니언 트레킹을 하고, 오후에 자이언(Zion) 캐니언에 들렀다가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가야 한다. 구글맵으로 운전해야 할 거리를 보니, (허걱!) 또 운전만 400km를 넘게 해야 한다.
어제까지는 날씨가 너무 맑아서 뜨거운 햇볕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오늘따라 날씨가 끄물끄물 흐리더니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트레킹을 해야 하는 일정인데 비가 오다니. 아침을 서둘러 먹고 짐을 꾸려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간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빠질 수 없는 인증샷.
브라이스 캐니언은 미국 3대 캐니언 중에 하나로, 여성스러운 아름다움과 고운 색을 간직한 특이한 곳이다. 오랜 옛날, 바다 밑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암석지대가 지각변동에 의해 땅 위로 치솟았고, 비에 의해서 약한 부분은 씻겨 내려가고 단단한 암석만 남아 무수한 첨탑 모양의 구조물들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마치 자연이 황토 찰흙으로 곱디곱게 빚어 놓은 웅장한 첨탑들을 원형 경기장 같은 곳에 모았다고나 할까. 여기 일출과 일몰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어제는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일몰을 놓쳤고, 오늘은 비가 와서 또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아쉽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준비해 간 비옷을 챙겨 입어야 했다. 트래일 코스는 여러 개 있는데 우리 가족은 퀸스가든 쪽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자연이 빚어 놓은 조각품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며 작품들을 감상하는 코스인데, 흙길이고 경사도 제법 있어서 미끄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가 운동화를 신은 우리 아이들을 보고, 운동화 신고 가다가 미끄러지면 큰일 난다고 해서 더욱 걱정되었지만, 비의 양이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다.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자연이 비를 내려 수백 만 년 동안 깎아 놓은 멋진 조각품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시간이 좀 지나자 비가 멈추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추니 첨탑 모양의 조각상들이 약간 밝은 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맞이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며 경치를 구경하는 코스인데,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니 더 내려갔다가는 올라가기 너무 힘들 것 같아 퀸스가든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다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아침에는 비가 와서 좀 우중충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비가 개고 나니 훨씬 멋진 경관을 선사한다. 정말 자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로 표현할 길은 없는 것일까? 직접 눈으로 봤을 때의 그 감동을 그대로 남길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이렇게 브라이스 캐니언의 짧은 트레킹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를 몰고 이제는 자이언 캐니언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