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 캐니언도 미국 3대 캐니언 중의 하나로, 붉은색의 나바호 사암으로 형성된 바위산이 강물과 바람에 의해서 수백 만 년 동안 깎인 지역이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며칠씩 머물며 대자연을 만끽하고 간다는 곳이기도 한데, 도로가 없었던 옛날에는 오지 중의 오지여서 박해를 피해온 모르몬교도들이 모여 살았다고도 한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자이언 마운트 카멜이라는 2차선 도로에 진입하는데, 이 길을 타고 가야 자이언 캐니언에 갈 수가 있다. 입구에 도착했는데 부슬비가 내린다. 내리는 비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둘째다. 찰칵!
조금 나아가니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곳이 있었다. 아니! 이런 기묘하게 생긴 바위산이 있을 수가. 원시인들이 이 산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어떻게 저런 무늬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오른다. 나바호 사암으로 구성된 붉은 바위산을 굽이굽이 돌아 고속도로가 연결되어있는데 가다 보니 갑자기 길 앞을 커다란 바위산이 떡 하니 막고 있다. 옛날에는 이 산 때문에 자이언 캐니언을 가려면 며칠을 돌아가야 했다고 하는데, 미국 정부는 이곳에 1.8km 정도의 터널을 만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폭약 등으로 발파작업을 해서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곡굉이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 이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터널 안에 가로등도 없어 너무 컴컴하지만, 앞차의 후미등 불빛과 내 차의 전조등에 의지하여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간다.
어두운 터널을 계속 가다 보면 저 앞에 터널의 끝이 보인다.
터널 밖으로 빠져나오면 시선을 압도하는 붉은 바위산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협곡이 눈앞에 나타난다. 엄청난 규모다.
도로는 계곡의 아래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데, 거의 180도로 차를 U턴하다시피 해야 하는 지그재그 모양의 도로가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 위로 이어진다. 좀 가다 보니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 포인트가 나온다. 저 멀리 동굴 입구처럼 깎여 들어가 있는 것의 이름이 여왕의 입술이라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차를 세우고 아이들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예쁘다고 한다더니, 내가 보기에는 둘째의 입술이 더 두툼하고 예쁘게 보인다. (ㅎㅎ)
이런 바위산들이 호위하는 길을 따라 자이언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내려간다.
평지에 다다랐을 즈음, 자이언 캐니언 국립공원 비지터 센터가 나온다. 비지터 센터에 들러 트레킹 루트를 추천받았다. 에메랄드 풀(?)인가 하는 곳은 비가 와서 안 되고, 대신 리버사이드 워크를 추천한다. 여기 흐르는 강을 버진(Virgin) 리버라고 하는데, 강이 수 만 년을 흐르면서 무른 나바호 사암 덩어리 산들을 날카롭게 깎아 만든 계곡을 물길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가 바로 리버사이드 워크다. 그런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비가 온다. 차는 입구에 세워 두고 공원에서 제공하는 셔틀로 이동해야 한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그렇다고 한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입구에 도착해보니, 강물은 약간 탁한 흙탕물이 되어 불어 있었다. 기대를 잔뜩 하고 갔던 아들의 표정도 우중충한 날씨처럼 흐리다.
트레킹을 시작하는 장소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물속으로 선뜻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다. 원래 여기는 발목 정도 적시는 얕은 곳인데 비로 인해서 수위가 많이 올라갔고, 상류에 폭우라도 내리면 자칫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아쉽고. 옷이야 차 안에서 새것으로 갈아입으면 되는 것이고. 그래! 가보자! 아이들과 아내를 설득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물속으로 들어온 우리 가족을 보고 용기 내어 따라오는 사람도 있고, 팔짱을 끼고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하나씩 나뭇가지 지팡이를 주워 들고 앞으로 전진~! 처음에 물에 들어오기가 좀 망설여졌는데 이미 옷도 신발도 다 젖어버려서 더 거리낄 것이 없다. 이제부터 올라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모두 신나게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 리버사이드 워크가 아니라 리버 인사이드 워크다. 둘째는 신났는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바위 절벽들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서 계속 올라간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최고의 난관에 부딪혔다. 물이 깊어 보이는 곳이 나왔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물어서 한참을 기다리니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몇 명에게 물어보니 물 깊이는 다행히 내 키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 키는 훌쩍 넘는 깊이다. 게다가 물이 탁해서 갑자기 푹 들어간 곳이라도 있으면 더 위험해 보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는 아쉽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기는 위험하고. 혼자 갔다 와 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 키는 넘지 않았다. 바닥도 진흙이 아니라 모래 같은 것이어서 푹 빠지지는 않는다. 더 깊은 곳이 있을지 몰라서 내가 지나간 안전한 길을 익히기 위해 팔을 뻗어 옆의 바위와의 간격으로 기억했다.
사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필자로서는 목숨을 건? 모험과도 같았다. ㅎ
아이들을 업어서 건너기로 하고 먼저 큰딸을 데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아예 헤엄을 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내 등에 딱 붙어서 아빠를 믿고 의지하는 딸아이를 업고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여 무사히 건넜다.
상류에서 소나기라도 더 내렸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될뻔 했다. 비지터 센터에서 날씨관련 정보를 꼭 확인하시길...
딸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둘째를 데리러 다시 돌아갔다 다시 깊은 물을 건너 올라온다. 저 굽이진 곳을 돌아가니 다시 얕은 물이 나온다. 다시 앞으로 전진!
강물을 거슬러 올라 올라가는데, 멋진 광경들이 계속 나오자 둘째의 입에서도 탄성이 나온다. 물에 의해서 깎이고 깎인 바위산들의 속살이 펼쳐져 있다.
가던 도중에 만난 귀여운 다람쥐도 있고.
참고로 이 계곡을 계속 따라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계곡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멋진 바위 절벽들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은 아쉽지만 여기까지 찍고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이렇게 짧은 트레킹을 마치고 셔틀버스를 타고 처음 주차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젖은 옷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이제는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침과 점심은 최대한 간편하고 저렴하게 해결했다. 대신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맛집을 찾자고 했다.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나왔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도 차츰 개고 있고, 레스토랑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도 멋지다.
넓고 높은 창문 너머로 멋진 바위산을 감상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여기서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등으로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점점 어둠이 몰려온다.
얼마를 달렸을까,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각자 자리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졌고, 아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옆을 지키고 있다. 2시간 30분 정도 달리니 높은 고개가 나왔다.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고개였는데, 정상에 다다르니 저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칠흑같이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욕망이라는 이름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가 연신 셔터를 눌러보지만 차의 진동이 너무 심해 제대로 사진을 찍기가 불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사진이 찍힐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라스베이거스로 입성한다. 이제는 3박 4일 동안 유명한 서커스 공연도 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스케줄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