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잠다운 잠을 푹 자고 아침에 눈을 떴다. 약간 흐린 날씨였으면 했는데 오늘도 무척 더운 날이 될 것 같다. 오늘 일정은 아치스 하이킹을 오전에 마치고 해지기 전 까지 브라이스 캐니언 입구까지 이동해야 한다. 구글 지도로 확인한 거리는 약 400km, 하이킹 후 네 시간이 넘게 운전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 오늘도 이어진다.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꾸려 아치스 국립공원 입구로 향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은 많지 않다. 참고로 아치스 국립공원 홈페이지(https://www.nps.gov/arch/index.htm)를 살펴보면 많은 정보가 있으니 꼭 훑어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특히, 하이킹 코스에 대한 정보는 유용하니, 아이들 체력과 그 날 날씨 조건에 맞춰서 선택하면 좋다.
아치스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있는 하이킹 정보
숙소에서 아치스 국립공원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미국 국립공원은 들어가는 입구에 이렇게 국립공원 이름을 나타낸 조형물이 있으니 여기서 사진은 필수.
국립공원에 가면 Visitor center부터 들러야 한다. 그곳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책자와 지도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아직 관광객들이 많지 않고 한가하다. 앞 공터에서 산양을 타고 사진을 찰칵!
원래는 유타주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델리킷 아치를 가고 싶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비지터 센터 안내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직원 왈, 델리킷 아치가 멋지긴 하나 너무 오래 걸어야 하고 중간에 그늘도 아치도 아무것도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완전 무리라고 하는 것이다. 순간 갈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자칫 일사병이라도 걸리게 되면 앞으로 여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델리킷 아치를 보러 가는 건 너무 위험한 선택인 것 같았다. 욕심을 버리는 대신 직원의 추천대로 주차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산책로가 시작되는 데블스 가든 루트를 가기로 했다. 아치의 질보다는 가족의 안전과 아치의 양으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데블스 가든을 가기 위해서는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오르막길에서 내려다본 도로. 자동차가 개미만 하게 보인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가는 길 주변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비지터 센터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면 멋진 뷰 포인트들과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들이 표시되어 있다. 데블스 가든 가는 길에 만났던 밸런스 락, 일부러 누가 재주를 부리듯 세워놓은 것 같이 큰 바위가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다. 밸런스 락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탑들 하나하나에 그들의 작은 소망이 담겨있으리. 우리 가족도 정성 들여 탑을 쌓았다. 아들 녀석은 자기의 작품이라고 하면서 이름까지 새겨놓았다. (ㅎㅎ)
하이킹을 시작하기 전 화장실은 필수. 비지터 센터에서 가져온 지도에는 화장실과 주차장의 위치가 잘 표시되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화장실 근처에 계곡처럼 보이는 바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마침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이미 지나간 비행기가 남긴 자국에 선명한 흰색 십자가를 그리고 있다. 크로스~!
그 십자가가 행운의 상징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으나, 바람과는 달리 우리의 고행은 곧 시작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데블스 가든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직원이 추천해준 유명한 아치까지 한 시간 정도 왕복이면 된다고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간다. 바위 색깔이 참 붉도다.
조금 더 가니 그늘은 사라지고 이런 뙤약볕을 맞으며 올라가야 하는 길이 계속 나온다.
숨이 턱턱 막힌다. 바위 밑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데 우연히 도마뱀을 만났다. 이 녀석도 더위에 지쳐 시원한 그늘을 찾았나 보다.
조금 더 걸어가 보니 데블스 가든이 나오고 멀리 랜드스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가 보인다. 아마도 직원이 추천해준 멋진 아치가 바로 랜드스케이프 아치인가 보다.
여기까지 보고 내려가야 했으나 우리랑 함께 올라왔던 사람들은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사실 랜드스케이프 아치를 보고도 그리 멋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차에 저 위에 더 멋진 광경이 있나 보다 생각하니 그냥 여기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래, 좀 더 가보자! 집사람과 아이들을 설득해서 다시 나아간다.
아! 그런데 경사가 좀 가파르고, 그늘도 없고, 자칫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늘이 나와서 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한 번에 물을 많이 들이켠 둘째 녀석은 결국 물을 바닥에 쏟고야 만다.
기운을 내서 다시 출발. 낑낑거리고 올라가다 보니 시야가 탁 트인 곳이 드디어 나타난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 위에 올라왔다. 힘은 들지만 멋진 경치가 이를 보상해주기에 충분하다.
오랜만에 아들 사진 찍어주고,
딸 사진도 찍어준다. 오른쪽에는 미완성의 아치가 보인다.
미완성의 아치쪽을 자세히 보니 저 아래 그늘에 사람들이 보였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저 아치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내려가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격려하고 갔는데,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고야 말았다. 아무리 가도 저기 사진에 나오는 아치는 보이지 않고 아예 다른 길이 나왔다.
다시 오던 길로 돌아서 내려갈까도 고민했지만 우리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자꾸만 내려온다. 뭘 보고 왔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조금만 더 가면 정말 멋진 아치가 있단다. 30분 정도 더 가면 된다고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30분쯤이야. 다시 가족들을 설득해 길을 나선다. 시야가 트이고 경치는 멋있는데 너무 더워서 힘이 많이 들었고 위험하기까지 했다. 내가 이리 힘든데 애들과 아내는 어쩔꼬.
좁다란 바윗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높이도 상당해서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앞으로앞으로! 이런 지형들이 바람에 깎여서 아치가 되나 보다. 힘들어도 사진은 찍어야지. 아래 사진 왼쪽에 저 멀리 보이는 아내와 아이들.
수백만년이 흐른 뒤에는 저 바위들도 아치가 되어있을 거라고...
둘째는 힘들었는지 중간에 더는 못 간다고 하고 주저앉아버렸다.
달래고 달래 조금 더 걸어가니 저 뒤에 아치가 보인다. 바로 더블오 아치다. 생각보다 별로 예쁘지 않다. (T_T)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아치는 만져보고 가자고 했지만 아들 녀석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버틴다. 사진 속에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선글라스에 가려있지만 눈도 조금 풀려있는 것 같다. ㅎㅎ
엄마랑 아들 녀석은 남아서 쉬기로 하고, 딸아이와 필자는 온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10분여 더 가서 드디어 아치에 다다랐다. 이름하여 더블오 아치. 오자가 두 개 위아래로 있어서 Double O Arche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래 아치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아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으련만!
사진을 찍고 다시 엄마와 둘째가 쉬고 있는 장소로 돌아왔는데 딸도 지쳤는지 벌러덩 드러눕고야 만다.
휴식을 좀 취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물을 1인당 한 통씩 들고 가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 글을 보고 여름에 아치스를 방문하시는 분은 물이라도 충분히 가져가길 바란다. 가져간 4통 중에 이미 3병은 바닥나고, 엄마가 아껴놓은 마지막 물병의 물을 조금씩 조금씩 나눠 마시며 겨우 주차장까지 살아서 내려올 수 있었다.
죽다가 살아서 돌아온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니 손사래를 친다. ㅎ
나중에서야 안 사실인데, 더블오 아치는 데블스 가든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우리가 이동했던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델리킷 아치까지 갔다 오고도 30분이나 남을 정말 먼 하이킹 코스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갔던 코스가 중간에 그늘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쉬운 코스도 결코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델리킷 아치를 보고 올 걸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 사진을 보는 지금도 진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자, 여기서 그 유명한 델리킷 아치 사진을 한 장 투척해본다.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입니다.
여행은 항상 추억과 아쉬움을 남긴다. 이 글을 보고 아치스 국립공원을 가시는 독자 여러분은 코스를 잘 결정하시길 바란다. 오전 하이킹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다음 목적지인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향한다. 중간에 점심도 먹어야 하고, 기름도 넣어야 한다. 잠시 들른 주유소 겸 편의점. 점심 대용으로 고른 샌드위치와 파워에이드. 미국 사람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용량이 장난 아니다. (ㅎㅎ) 그래도 맥도널드 햄버거보다는 훨씬 좋은 식사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우리 빨간 차도 배를 불리고 이렇게 생긴 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비가 오나 보다. 이런 광경을 땅이 좁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듯. 비가 오는 부분은 마치 구름이 실처럼 풀어져 땅에 닿은 것 같이 보인다.
저 너머에는 살짝이지만 무지개도 보인다.
황량한 사막을 지나자 이런 목초지대가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소들도 평화롭기 그지없이 보인다.
브라이스 캐니언이 다가올수록 이제는 이런 후두들이 보인다. 참 신기하게도 생겼다.
드디어 브라이스 캐니언 앞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베스트 웨스턴에서 묵는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서둘러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향한다. 브라이스 캐니언 위 하늘을 수놓는 멋진 일몰을 보고 싶어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일몰을 보지 못할까 봐 마음이 조급해진다.
기대가 컸지만 하늘이 흐려서 이렇다 할 일몰은 보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다시 내려왔다.
브라이스 캐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이번 여행 먹거리 콘셉트는 되도록 아침과 점심은 최대한 간편하게 먹고, 저녁은 주변 맛집에서 거하게 먹는 것이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가 본다.
미국에 왔으니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데 양이 정말 많다. 와인도 한 잔 시켜보고~
진판델인 줄 알고 시켰는데 화이트 진판델이다. 달달한 와인은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한 잔 마셔준다.
정말 먹음직 스렇게 보였던 스테이크였는데 사진이... ㅠ.ㅠ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기념품 가게를 돌아본 후, 호텔로 돌아왔다. 베스트웨스틴 호텔은 멋진 선택이었다. 방도 아주 넓었고, 특히 직원들이 너무 친절하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을 만큼 괜찮은 호텔이다.
내일은 브라이스 캐니언 트래킹, 그리고 자이언 캐니언을 들러 밤에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가는 일정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