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하면 떠오르는 사자성어는 뭐가 있을까? 흥청망청, 일확천금, 패가망신? 이런 단어들이 우선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모두 부정적인 의미의 것들이지만, 라스베이거스는 사실 가족 여행지로 정말 훌륭한 곳이다. 미국 서부의 대표 관광지라 할 수 있는 그랜드 캐니언 미국 국립공원이 근처에 있어서 당일치기 투어가 가능하고, 특급 호텔을 착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며, 세계 최고의 공연이 날마다 펼쳐지고, 내로라하는 맛집이 즐비한 곳이 바로 라스베이거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라스베이거스를 택한 이유도 그동안 운전하느라 쌓였던 여행의 피로도 풀면서 세계 최고의 쇼로 알려진 ‘KA 쇼’와 ‘O 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자,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의 절반 일정을 마치고, 자이언 캐니언에서 2시간여 운전한 끝에 드디어 라스베이거스에 들어선다. 우리 가족이 첫날밤을 지낼 호텔은 바로 북쪽 구시가지에 있는 골든 너겟(Golden Nugget) 호텔이다. 호텔 앞에서 전구쇼도 펼쳐지고, 수족관이 달린 수영장과 세상에서 가장 큰 금 원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호텔이다.
저녁 9시 넘어 도착했는데 10시에 전구쇼를 한다고 하여 짐 정리도 제대로 못한 채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본다. 너무 피곤해서였는지 생각보다 전구쇼는 별로였고 사람만 북적이지 딱히 볼 게 없었다.
색소폰을 부는 아저씨가 라스베이거스의 밤을 밝히고 있다. 몸이 천근만근 이어 더 있지는 못하고 호텔로 돌아와 바로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2박 3일 휴식을 위한 일정이 이어진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다시 둘러보니, 휘황찬란한 불빛과 그 많던 사람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라스베이거스의 민낯이 드러났다. 쓰레기 등으로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깔끔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더는 볼거리가 없어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수영장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몰고 나간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만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많은 사람이 수영장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수족관에 있는 상어와 큰 물고기들도 보고, 미끄럼을 타며 즐겁게 수영하는 것을 지켜보며 필자도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가져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시선 고정은 필수다.
수영이 끝난 아이들을 방에 데려다주고 필자는 한국에서 미리 예매했던 공연 티켓을 받으러 잠깐 밖으로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서커스라는 KA쇼와 O쇼 티켓이다. 워낙 유명한 공연이라 우리의 여행 일정에 맞춰 티켓을 예매하기 쉽지 않았고, 표가 있더라도 좋은 자리는 턱없이 비쌌다. 직접 공연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격을 보고, 또 사설 사이트를 통해서 비교를 하던 중 라스베이거스 현지 한국 여행사를 발견해서 비교적 착한 가격에, 원하는 날짜에 좋은 자리를 예매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걱정은 과연 그 여행사 사람을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 티켓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속한 장소에, 약속한 시간에 여행사 직원을 만나 표를 받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노였다.
체크아웃을 위해 다시 짐을 꾸리고 객실에서 나와 세상에서 가장 큰 금덩어리를 보러 갔다. 이걸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좋았을꼬. 참고로 이 금덩어리는 호주 빅토리아에서 케빈 힐러(Kevin Hiller)라는 사람이 간단한 금속 탐지기로 발견했다고 하는데 바로 땅 표면 6인치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케빈은 금덩어리를 카지노에 팔았고, 카지노 이름도 골든 너겟이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딱 좋은 호텔 이름이고 상징물이지 싶다.
다음 숙소인 MGM 호텔로 가는 도중에 라스베이거스 프리미엄 아웃렛에 들렸다. 벌써 점심때가 되어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입구에서 받았던 팸플릿에 둘러볼 곳을 정하고 위치를 확인한 후 쇼핑을 시작한다.
착한 가격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키 큰 남자가 길거리 가운데서 애벌레 모양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길쭉한 주황색 애벌레 모양의 장난감이 그 남자의 왼손 위에서 마치 명령을 듣고 움직이는 잘 조련된 생명체처럼 손가락 사이를 이리저리 돌면서 빠져나오고, 팔을 타고 몸 쪽으로 기어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점프도 해대는 것이 꼭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벌레를 조정하는 줄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유심히 보았지만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참 신기한 장난감이다.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줄 같은 건 없고 연습을 많이 하면 자기처럼 꿈틀이를 조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줄도 없이 조정할 수 있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그렇단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얼마냐고 물어봤다. 하나에 12달러라고 한다. 좀 깎아 달라고 했더니 10달러짜리 훈련용 매직 컵을 3달러에 준다고 해서 애벌레 장난감과 훈련용 컵을 15달러에 샀다.
꿈틀이와 놀 생각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과 함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장난감 포장지를 뜯어서 실물을 만져보려고 하였으나 어찌나 질긴 플라스틱으로 포장이 되어있는지 도저히 커버를 벗길 수가 없었다. 낑낑거리며 포장지를 뜯으려 하다가 뒤통수가 따가워 돌아온 길을 뒤 돌아보니, 우리에게 장난감을 팔았던 청년이 조금 어두운 눈빛으로 우리가 가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왜일까?
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차를 몰고 두 번째 숙소인 MGM 호텔로 향했다. 호텔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1층 로비를 향해 가는데, 복도 좌우에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게 있었다. 가만 보니 아까 우리가 샀던 꿈틀이가 있는 게 아닌가? 요즘 미국에서 인기 있는 장난감은 맞는가 싶어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니 글쎄 하나에 5달러에 팔리고 있는 것이었다. Oh my god...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들어가 가위로 꿈틀이 포장지를 벗기고 보니 아주 자세히 봐야 보일만 한 얇고 투병한 줄에 꿈틀이 코가 묶여 있었다. 속았다! 그 미국 청년이 어리숙한 한국 여행객들을 낚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미 사버린 걸 어찌하랴. 두 세트를 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해본다. 그 사기꾼 청년도 어차피 연습해서 그렇게 자연스러운 꿈틀이의 몸놀림을 만들어 냈을 터이니, 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의욕만 넘쳐 혼자 연습하던 도중에 그 얇은 줄이 금세 얽혀버렸고 풀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풀 수 없이 꼬여버리고 말았다. 꼬인 매듭이 눈에 훤히 보여 잘라내고 다시 이어봤으나 이음새 부분이 눈에 쉽게 띄어 누가 봐도 줄 가지고 장난친다는 것을 단박에 들킬 것이 뻔했다.
꿈틀이 조련사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꿈틀이 때문에 기분 좋게 입성한 라스베이거스의 일정을 망칠 수는 없는 법. 휴식을 조금 취한 후, 시간에 맞춰 드디어 KA 쇼를 보러 나간다.
KA 쇼는 MGM 호텔의 전용 극장에서 벌어지는 태양의 서커스 쇼 중에 하나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쌍둥이 남매의 모험을 그려낸 탄탄한 스토리에 동양적인 색채와 신비감을 담아낸 이 쇼는, 각종 첨단 무대장치를 이용해 보는 이의 혼까지 쏙 빨아드리는 마술과 같은 장면들이 쉬지 않고 선보인다. 무대와 가까운 좋은 자리를 예약해서 배우들의 숨소리와 얼굴의 긴장감까지 함께 느낄 수 있었는데 공연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웅장한 음악과 박진감 넘치는 서커스의 조화가 너무 훌륭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을 즐겼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는 엔딩에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 손바닥이 아프도록 기립박수를 쳐댔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봐도 좋고, 어르신과 함께 가도 모두 만족할 만한 최고의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구로 나오면 KA쇼에 사용된 소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호텔 밖으로 나와보니 어둠이 내린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 거리가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하고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동안 장시간 운전에 여독이 쌓여선지 호텔로 돌아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벌써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마지막 밤은 좋은 호텔에서 보내고 싶었다. 어디를 고를까 고민하다가 앙코르 호텔을 선택했다. 스티브 윈이 윈 호텔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지은 호텔이 바로 앙코르 호텔인데 라스베이거스 최고급 호텔 중 하나다.
아침 일찍 앙코르 호텔에 전화해서 Early check in이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오전 9시부터도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래 오후 3시부터인데 이게 웬 떡? 서둘러 짐을 챙겨 앙코르로 향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둘째 녀석은 어제 보기 좋게 사기당한 꿈틀이를 만지고 있다. 저 장난감을 보니 내 속도 다시금 꿈틀거린다.
체크인을 일찍 해서 전망이 좋은 방은 배정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호텔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체크인을 완료하고 배정받는 방으로 향한다. 붉은색의 벽과 마치 옥으로 가공한 듯한 장식품이 인상적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정받은 방을 찾아간다. 객실이 정말 넓고 화장실도 고급지다. 사진을 먼저 찍으려 했는데 말릴 틈도 없이 큰아이는 냉큼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갔고 둘째는 소파에서 뒹군다. (ㅎㅎ)
아이들 수영복을 챙겨 수영장으로 간다. 윈 호텔과 앙코르 호텔 투숙객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게 정리된 깔끔한 수영장 너머로 우리 숙소인 앙코르 호텔이 보인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수영하고 노는 모습을 그늘에 앉아 지켜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렇듯, 호텔 수영장에서 아이들 물놀이를 할 수 있고, 저녁때는 맛있는 식사와 멋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라스베이거스다.
아이들이 지칠 때쯤 호텔로 돌아와 좀 쉬다가 벨라지오 호텔로 이동을 한다. 바로 오늘 우리가 예약한 O 쇼를 보기 위해서다. 벨라지오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멈춰 사진을 찍게 된다는 꽃 천장. 우리도 사진을 남겼다.
호텔 구경을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간다. 그동안 부족했던 영양도 보충하고 각자 식성에 따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로 결정했는데 식당 이름도 ‘뷔페’다.
인기 있는 식당이었는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다.
드디어 O 쇼를 보러 입장~!
공연장으로 들어오면 레드 커튼으로 가려진 무대가 보인다.
저 레드 커튼이 걷히고 공연이 시작되는 데 공연 시작 바로 전에 피에로들이 나타나 흥을 돋운다.
KA 쇼가 ‘불’을 주제로 했다면 O 쇼는 ‘물’을 주제로 한다.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특별무대에서만 펼쳐지는데, 무대가 땅으로, 땅에서 발목이나 무릎까지 오는 얕은 물로, 얕은 물에서 배가 지나가고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깊은 물로 순식간에 바뀌는 마법 같은 무대 연출을 볼 수 있다. 싱크로나이즈, 다이빙 등 물을 주제로 할 수 있는 모든 서커스는 바로 이 한 무대에서 보여준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쇼에 흐르는 배경 음악은 녹음된 것이 아닌 연주자들에 의한 생음악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쇼가 끝나고 공연장 밖으로 나와 아이들 기념사진을 남긴다.
호텔 밖으로 나와보니 그 유명한 벨라지오 분수 쇼가 펼쳐진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 정말 멋지다.
분수 쇼를 보고 길을 따라 호텔 쪽으로 걸어가는데 악마 분장을 하는 사람 앞에서 어떤 여자가 그 앞에서 태연하게 포즈를 취한다.
이렇게 라스베이거스의 메인 도로인 스트립 스트리트를 따라서 호텔 쪽으로 걸어오면서 화려하게 장식한 호텔들의 야경을 즐긴다.
이렇게 라스베이거스의 마지막 밤이 흘러간다. 이제 내일은 서부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