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다시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길에 오른다. 미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정에 넣을까 말까 가장 고민했던 곳이 바로 데스밸리였다. 지역에 따라 가장 더울 때 낮 온도가 50도 이상 올라가는 곳도 있고, 인적이 드문 길에 차 고장으로 사망 사고가 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광고를 찍을 만큼 특이한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고 그런 삭막한 사막에 뜨는 밤하늘의 별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여 우리의 여행 코스에 넣게 되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밤을 불태웠던 도시는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정말 밤에 보는 라스베이거스와 낮에 보는 라스베이거스는 전혀 다른 두 얼굴의 도시다.
룩소 호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황량한 낮의 모습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데스밸리까지의 길을 구글 위성사진으로 살펴보면,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루트인데 데스밸리의 숙소까지는 거의 270km를 달려야 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참 독특하다. 땅에서 쑥 솟은 듯 한 바위산들이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사막에 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이다. 밤에 별을 봐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목적지 도착시각은 오후 6시 22분. 벌써 7년 전 내비게이션이라 좀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 번도 배신하지 않은 내비여서 좋았다. 아줌마 목소리도 좀 거칠지만 들을 만했다.
저 멀리는 비가 오나 보다.
갑자기 먹구름 사이 틈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마치 빛의 커튼 속을 달리는 것 같다.
왼쪽은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는 듯하고
오른쪽은 햇빛이 비추는데 정말 이런 희한한 날씨는 처음이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아이들 사진을 찍어준다. 사막과 비구름이 주인공이고 아들은 들러리다.
차를 몰고 좀 더 나가니 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진다. 아예 차를 세우고 가족 모두 바깥으로 나왔다. 우와~사막에 폭풍우가 몰아치는구나~
이런 엄청난 순간을 놓칠까 봐 아이들을 불러놓고 사진을 찍어준다.
인물은 딱 가운데 ㅠ.ㅠ
이건 더 어정쩡한 구도. 어쩔...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사진들인데 이렇게 인물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들은 여행 떠나시기 전에 꼭 사진을 잘 찍는 노하우를 배워가시면 좋겠다. 인물의 배치, 황금분할 구도 정도만 알아서 가도 작품사진을 찍을 기회를 얻게 될 테니 말이다.
또 하나 필자 사진에서 아쉬운 점은 작은 스폿이다. 그 당시 미러리스 카메라를 처음 사서 작동법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여행에 들고 나왔다. LA 숙소에서 왠지 모를 호기심에서 렌즈를 분리해서 안을 들여다 보고 조립을 했었는데 글쎄 그때 먼지가 들어갔는지, 침이 튀었는지 사진에 얼룩이 보인다. 특히 배경화면이 파란색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얼룩...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사진 속의 얼룩을 보며 땅을 친다.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 드디어 데스밸리 국립공원을 알리는 표지판 앞에 섰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제대로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다.
주변 산의 모양도, 암석의 색도 참 독특한 곳임이 틀림없다.
숙소로 가기 전에 우리가 들러야 할 목적지는 바로 단테스 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도를 떠올리게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해발 1,600m 정도 높이에서 데스밸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으로 가장 인기 있는 뷰 포인트 중 하나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도착해야 해서 마음이 급하다.
오르막길을 한참을 올라서야 단테스 뷰에 도착했다. 오 마이 갓~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갔던 날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게 어마어마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불고 추웠던지 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이니. 저 건너편 산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난리가 났다. 꼭 지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하지만 사막의 더위와 갈증에 지쳐가던 생명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비일까. 생명체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엄청난 폭풍우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아쉬운 대로 파노라마 뷰로 담아본다.
단테스 뷰에서 바라본 데스밸리. 폭풍우가 몰아친다.
아이들 기념사진은 필수.^^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 우리 가족은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단테스 뷰 아래에서는 무슨 영화를 찍고 있는지 엄청나게 큰 트레일러와 사람들이 몰려있다.
이제 날은 어두워졌고 숙소로 향한다. 데스밸리 내 몇 안 되는 숙소 중 하나인 Furnace creek ranch다. Furnace의 뜻이 용광로이니 그 지역 자체가 얼마나 더운지 느낌이 확 와 닿는다. 체크인하고 방을 살펴본다. 침대도 넓었고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네 식구가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충분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수돗물을 트는데 더운물이 나온다. 지붕 위 물탱크가 얼마나 달궈졌으면...
주린 배를 채우려 리조트 내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찾았다. 식당에 우리 가족만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갔는데 예상과는 정 반대로 줄 서서 대기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넘쳐났다.
스테이크와 아이들이 먹을 만한 메뉴를 주문하고 필자가 좋아하는 레드와인도 한 잔 골랐다. “어허! 와인은 아빠 거라니까 이 녀석이.”
음식은 생각보다 푸짐했고 맛도 좋았다. 역시 고기는 불에 구워야 제맛!
맛있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봤는데 아직도 구름이 잔뜩 끼어서 별을 보기 힘들다.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을 찾았다. 리조트 가운데 있는 야외 수영장이었는데 이미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가만히 하는 말을 들어보니 미국 아이들이 아니라 프랑스 아이들이었다. 프랑스에서까지 데스밸리를 보러 오다니.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이빙도 하고 수영도 하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 참 좋았다. 비록 데스밸리의 별을 보진 못해 아쉽긴 했지만 낮에 보았던 폭풍우 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데스밸리를 여행 계획에 넣은 건 참 잘한 일 같다. ㅎ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는 맑게 개어있었고 마른풀 냄새가 좋았다.
해가 뜨면 더워지니, 점심 전에 데스밸리를 둘러볼 계획이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한다.
날이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저 멀리 오늘의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처음에 들른 곳은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 19세기 말, 이 지역에서 붕사(화장품, 특수 유리, 의약품 재료 등에 사용되는 광물)가 발견되어 개발이 이루어졌는데, 붕사 산업의 인기가 사그라들 무렵에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해서 큰 성공을 거두게 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자브리스키 포인트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약 100m 정도 걸어 올라가야 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이런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아침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색감이 정말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제는 다음 목적지 배드워터(BAD Water)로 향한다. 오랜 옛날 서부 개척자들이 이 지역을 지날 때 목이 너무 말라서 고인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소금물이어서 먹지 못했기에 BAD Water라 불렀다고 한다.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배드워터로 가는 드라이브 길은 너무 멋있었다. 예전에 TV 광고에도 나왔던 도로라고 하는데 사진을 남기지 못해 아쉽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첫째 아이가 많이 피곤해 보인다.
자, 이제 배드워터로 걸어 들어가 본다. 멀리서 봤을 때는 호수 표면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표면을 하얗게 덮고 있는 것은 소금 덩어리다.
아니! 이런 소금 바닥에 거미가 살다니, 참 희한한 일이 로고.
절벽 쪽을 바라보면 ‘SEA LEVEL’이라고 쓰인 팻말이 걸려있다. 해수면의 위치가 팻말의 높이이고, 우리는 약 85.5m 정도 해수면 아래에 서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저 절벽 꼭대기는 어제 우리 가족이 들러 몰아치는 폭풍우를 보았던 단테스 뷰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볼거리인 아티스트 팔레트(Artist’s Palette) 지역에 들렀다. 메인 도로에서 좀 떨어진 외딴곳으로 차를 몰고 가야 했는데, 도로가 마치 파도처럼 위아래로 굽이친다. 마침내 발견한 아티스트 팔레트, 자연이라는 화가가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팔레트 위에 갖가지 색의 물감을 짜 놓은 것처럼 보인다.
짧은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다시 숙소를 나선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The Ranch at Furnace creek. 하룻밤 묵어 가기에는 좋았던 곳이다.
데스밸리를 떠나기 전에 Visitor 센터에 들러 본다. 건물에 들어가는 입구 현관문 손잡이에 이렇게 붕대가 묶여 있다. 이 사진만 보아도 데스밸리가 얼마나 뜨거운 곳인지 감이 올 것이다. 만약 저 붕대가 없이 맨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고 포스터도 무시무시하다.
이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사막을 끝없이 달리다 보니 이런 도로가 보인다. 우리 앞을 떡 하니 가로막고 있는 산이 바로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이다. 저 산맥이 없었으면 직선으로 두 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거리를 뺑 돌아가야 한다. 무려 일곱 시간 운전을 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