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사는 세쿼이아 국립공원이다. 데스밸리에서 세쿼이아 국립공원까지 직선거리는 170km 정도인데 길게 뻗은 시에라 네바다 (Sierra Nevada)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산맥 끝으로 돌아가야 한다. 덕분에 총 운전 거리는 524km, 적어도 6시간은 달려야 한다.
데스밸리를 벗어난 지 한참인데도 계속 사막의 모습이 펼쳐진다. 얼마쯤 왔을까. 우리 앞을 떡 하니 막고 나타난 웅장한 산맥, 저것이 바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다.
보기만 해도 험준한 산맥이다. 저 산맥 너머에 바로 세쿼이아 국립공원이 있는데, 돌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 가는 도중 점심때가 되어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아이들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딸아이가 우연히 고른 아이스크림. 생긴 것도 희한한데 맛은 더 희한하다고,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그런 맛이라고 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산길로 안내한다. 자동차 길이 아닌 것 같은 좁은 도로로 계속 안내해서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무척 걱정되었다. 하지만 믿고 계속 달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힘들게 고개를 넘으니 전혀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물이 가득 담겨있는 바다 같은 호수가 보인다.
이어서 난데없이 구릉에 목초 지대가 나타난다. 타는 듯한 여름에서 갑자기 서늘한 가을로 계절이 변해버린 것 같다.
또다시 얼마를 달렸을까. 이제 물이 있는 계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세쿼이아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공원 입구를 표시하는 표지였을 뿐, 우리가 가야 하는 숙소까지는 아직 한참을 더 달려야 한다. 산길을 계속 달리는 중 길가에 어마 무시하게 큰 거미를 발견했다. 곤충박물관에서 봤던 타란툴라만큼이나 큰 녀석이다.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떠난다. 조금 가다 보니 간이 신호등이 나오는데, 초록 불에서 빨간 불로 막 바뀐다. 그냥 지나가 버릴까 순간 망설였지만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왔기에 차를 멈추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빨간불이 초록으로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 이런! 오른쪽에 표지판을 자세히 보니 2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건 다 그 엄청나게 큰 거미 덕분이었다. 데스밸리 소금 바닥에서 거미를 봐서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세콰이어 거미가 일을 낸 것이다.
2분 거미 구경의 대가로 20분을 기다렸다가 출발했는데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어둠이 빨리 내려앉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주는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늦으면 놓칠 수도 있는 일! 마음이 급해지는데 아들 녀석이 다시 붙잡는다. 배가 아프단다. 어렵게 찾아간 간이 화장실.
일을 마치고 둘째가 나올 때쯤 되니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로 어둠이 내린다.
숙소는 국립공원 내에 있는 랏지, 숙소에서 저녁도 먹을 수 있는 옵션인데 거미와 둘째의 복통 덕분에 많이 늦었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정신없이 달려 도착해보니 아직 식사하는 숙박객들이 있었고, 우리 가족도 시리얼로 겨우 곡기를 채울 수 있었다.
예약했던 방으로 올라가 보니 넉넉한 크기의 큰 침대 하나와 2층 침대가 있다. 화장실도 나름 깔끔하니 괜찮은 숙소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에는 몇백 년 전부터 이미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고 있었던 나무가 있다는데 직접 보는 느낌이 어떨까. 짐 정리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보니 별들이 가득 떠 있다. 삼발이를 가지고 나와 별을 찍으려 발버둥을 쳐보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진사는... 애매한 사진만 남기고 말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멋진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은 사진 찍는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는 게 좋겠다. ㅎ
다음날 아침, 역시나 일찍 눈이 떠진다. 이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눈이 자동으로 떠지는 것은 설렘 때문인가 보다.
창밖을 계속 보고 있노라니 새털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아침의 고요가 내린 숙소 주변을 걸어본다. 어제는 밤에 도착해서 보지 못했는데 근처에 호수도 있고 공기도 정말 상쾌하다.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길쭉길쭉 뻗어 있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드디어 세쿼이아 나무들을 보러 간다. 당연히 우리의 관심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피 기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제너럴 셔먼 트리다. 추정 수명이 약 2500년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궁금하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진한 향나무 냄새를 맡으며 걸을 수 있어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만나는 셔먼 장군 나무님. 크기가 무시무시하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줘야 하는데 나무의 키가 너무 크고, 그 앞의 사람은 개미만큼 작아서 한 번에 담기 어려웠다. 아무리 각도를 잡아보려 해도 나무가 너무 커서 사진 찍기가 애매하다.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하여 나무 전체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장군님 나무도 보고, 주변에 있는 다른 나무들도 구경하면서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2,000년 넘게 산 거목 앞에 우리 존재는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100년도 살지 못하면서 1,000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빈손으로 떠나는 게 우리의 인생인데 2,000년을 넘게 살아온 저 나무는 아무런 욕심도 시기도 질투도 없이 자연이 주는 물과 신선한 공기, 햇빛만으로 욕심 없이 사는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저녁까지 요세미티 국립공원 숙소에 도착하는 일정인데 그 중간에 있는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 군락지를 둘러보고 가는 일정이다. 200km 정도를 달려 마리포사 그로브(Mariposa Grove)에 도착했다. 이곳은 또 하나의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들의 군락 장소로 그리즐리 자이언트(Grizzly Giant) 트리가 있는 곳이다.
짧은 산책길도 있고 제법 긴 산책길도 있다. 우리 가족은 그리즐리 트리만 보고 다시 내려올 예정이다.
그리즐리 자이언트 트리를 보러 가는 길에 아주 커다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덩그러니 누워있다.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도 않아서 저런 상태로 몇백 년을 버틴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옆으로 돌아가서 사진 한 장 더! 같은 나무지만 다른 느낌!
이런 산책로를 계속 올라가다가
사슴도 만나고, 다람쥐도 만난다.
드디어 그리즐리 자이언트 트리가 보인다. 나무 바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나무 밑동만 보이기 때문에 참 폼이 나지 않는다. 참 사진을 찍기 어려운 장소다. (^_^)
다시 비장의 무기 파노라마 샷으로~
이렇게 그리즐리 자이언트님을 뵙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마리포사 그로브에 대한 설명 표지판 앞에서 찰칵.
이렇게 마리포사 그로브에 있는 그리즐리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 탐방을 마치고 요세미티 공원의 하프돔을 보러 글래시어 포인트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