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 로뎅 미술관
파리 둘째 날이 밝았다.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 - 로뎅 미술관 -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 개선문.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일정이다.
구글 지도에서 보면 주요 관광지가 중심가에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이 어제 방문했던 퐁네프다리, 셍샤펠 성당은 파란색 박스로, 오늘 방문해야 하는 곳들인 오르세 미술관, 로뎅 미술관,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노란색 박스로, 나중에 방문할 곳들은 초록색 박스로 표시해 보았다.
여행 동선을 잘 짜서 걷는 거리를 최대한 줄여야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아침을 먹고 먹고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다. 약간 멀지만 걸어갈 수도 있는 오르세 미술관. 하지만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일정이라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야 해서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가 루브르 박물관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 몇 정거장 가니 오르세 미술관이 나왔다.
여기서 오르세 미술관에 대해 잠깐 알아보고 가자.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1804년 최고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오르세 궁이라 불렸으나 불타 버리고, 1900년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 국립 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로에 의하여 오르세 역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대적으로 지은 역사(驛舍)였으나 1939년 문을 닫게 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9년에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 건축과 박물관 내부가 변경되어 1986년 12월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관되었다.
인상파 미술관에 전시하던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 일명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 미술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공간일 뿐 아니라 공연·교육·토론의 장소로도 애용되는 다기능 문화 공간이다.
19세기 작품, 정확히 말해서 2월 혁명이 일어난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4년까지의 회화·조각·공예 등이 집대성되어 있다. 1층에는 고전주의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걸작 《샘》과 1800년부터 1850년대의 역사화, 샤를르 가르니에 설계의 오페라좌의 정밀 모형도, 1870년 이전의 인상파 회화와 사실주의 회화가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기》와 《만종》, 인상파의 선구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피리 부는 소년》,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등의 작품이 있다. 2층에는 아르누보실이 있으며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과 20세기 초 앙리 마티스, 피에르 보나르 등의 작품이 있다. 3층에는 클로드 모네, 에드가르 드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등의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흐의 《화가의 방》, 드가의 《프리마 발레리나》,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등이 있다.
19세기 미술의 중심은 인상파·후기 인상파·신인상파 등의 회화이지만, 여기서는 회화뿐 아니라 그 그림이 탄생한 당시의 장식품·조각품·건축양식·풍속 등도 볼 수 있다. 19세기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르세 미술관 [Orsay Museum] (두산백과)
뮤지엄 패스로 줄 안 서고 바로 입장~
오르세 미술관 내부에서는 특정 장소 외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많이 아쉬웠다. 특히 사진으로만 봤던 르누아르, 고흐 등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다.
꿈에 그리던 고흐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았고, 르누아르 작품들의 실제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모여있는 5층이 하이라이트.
5층에 있는 식당을 지나 건물 밖 옥상으로 나갈 수 있는데 큰 시계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온다.
어젯밤 세느 강 유람선을 타고 오르세를 지날 때 봤던 그 큰 시계인가 보다.
시계바늘이 사람 키만큼이나 크다.
옥상으로 나가보면 이렇게 주변의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나오는데 세느강 건너 루브르 박물관 일부가 보인다.
뛸르히 가든 너머로는 몽마르뜨 언덕 위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보인다.
다시 내부로 들어와 유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안타깝게도 밀레의 만종은 보지 못했다. 해외에 밀레 전이 있어서 반출된 모양이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서 1층 스낵코너에서 먹었던 커피와 빵들.
벽에 걸린 이 시계도 정말 멋진 작품이다.
오르세 관람을 끝내고 로뎅 박물관으로 향한다.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고 지도로만 보고 찾아가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골목을 지나가는데도 건물들이 정말 멋스럽다.
이름 모를 작은 성당도 있고,
건물들 사이 골목으로 15분 정도 걸어가서 겨우 찾은 로뎅 박물관. 여기도 뮤지엄 패스로 줄 안 서고 입장.
매표소를 나가 정원으로 들어서면
바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 여기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자.
아티스트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국적 : 프랑스
출생-사망 : 1840년~1917년
제작연도 : 19세기경
종류 : 조각
기법 : 조각, 청동(sculpture (technique),bronze,)
크기 : 높이 186 cm
소장처 : 로댕 미술관
로댕의 <지옥의 문>에는 단독상이나 그룹상으로 유명해진 여러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후에 그 상들에는 고유의 제목이 붙여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 또한 그 대표작으로 지옥에 스스로의 몸을 내던지기 전에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팽팽한 긴장감과 사실성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로댕 전기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뇌가 되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이다. 그는 굵은 눈썹, 황소 같은 목, 야성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다. 가공할 만한 근육에서는 힘이 느껴지지만, 고개를 숙이고 숙고하는 듯한 형상에서 고도의 집중력이 발산되고 있다. 그리고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전체 형태가 좌상이라 웅크린 덩어리가 단순하게 보여 좀 더 형태가 강하게 보이고 있다. 내부 덩어리 구조는 근육의 흐름을 극도로 강조하고 있으며 빈틈없이 잘 짜인 비례나 해부학적인 표현은 인체의 표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거장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하여 고전적이며 르네상스적 분위기가 한껏 베어나는데, 서글프고 체념적이며 고독한 분위기가 많이 난다. 부분적인 근육의 긴장감이나 표현력이 우수하며 고전적이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흔적도 엿보이며 근대 조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 기성 비평가들은 조소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로댕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미술지 <레 자르 Les Arts>의 편집장인 가브리엘 무레(Gabriel Mourey)는 이러한 비평가들의 평가에 대항하기 위해 기부금 모금 형식으로 항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청동으로 주조하여 훨씬 위력을 갖춘 <생각하는 사람>은 파리 시에 기증되어 팡테옹(Pantheon) 광장 앞에 세워져 1906년 화려하게 재공개되었으며, 1922년 로댕의 저택이었던 로댕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레옹 도데(Léon Daudet)는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이 조각상을 위해 광장이 만들어진 것처럼 팡테옹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로댕의 작품들은 초시간적이지만 주어진 사건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로댕은 당시 최고의 공공 기념비를 제작했던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정원 곳곳에 로뎅의 작품들이 있고, 카페가 있어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휴식을 준다. 우리 가족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니 또다른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푹 수그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정원 끝에서 바라본 로뎅 박물관의 모습이다.
이제 로뎅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 지옥의 문을 보러 간다.
지옥의 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원어명 : Porte de l'Enfer
작가 : 로댕
종류 : 조각(청동)
크기 : 635 ×400 ×85㎝
제작연도 : 1880∼1917년
소장 : 파리 로댕미술관
크기는 세로 635㎝, 가로 400㎝, 너비 85㎝이며, 청동으로 만든 조각이다. 로댕의 1880∼1917년 작품으로, 파리 로댕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 《발자크 기념비》와 더불어 로댕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1880년 프랑스 정부는 새로 건립하기로 한 장식미술관의 출입문을 로댕에게 의뢰하였다. 평소 단테의 《신곡》을 즐겨 읽었던 로댕은 《신곡》의 〈지옥편〉을 조각의 주제로 삼았는데, 그 내용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방문하여 처절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점토로 작게 제작된 186여 개의 작은 조각상들은 다시 석고로 제작되었고 그 후 형상을 첨가하거나 떼어내는 등 여러 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 또 이러한 조각상들은 청동이나 석고, 대리석의 독립상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지옥문의 가운데 팀파늄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그중 가장 유명한 독립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은 창조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우골리노》 《웅크린 여인》 《세 망령》 등의 작품이 지옥문에서 시작되어 나중에 독립상으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지옥의 문》은 2쪽의 패널로 구획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기베르티(Lorenzo Giberti)의 피렌체 세례당의 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옥문 속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인간 군상이 한데 얽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네모로 나누어진 청동 문의 형식을 무시하고 형상과 문이 한데 얽혀 녹아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옥의 문》은 1917년 로댕이 죽을 때까지 제자리에 세워지지 못했다. 장식미술관 부지에 오르세 미술관이 들어서고 장식미술관은 루브르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래의 계획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1900년 로댕은 이 작품의 오리지널 석고 모형을 자신의 회고전에서 선보였다. 《지옥의 문》의 청동 작품은 모두 로댕의 사후에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은 로댕의 전 생애에 걸친 집약적인 작품으로 간주된다. 즉, 여기에는 고딕 건축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리고 단테와 보들레르 등 로댕의 주된 관심사들이 폭넓게 반영되어 있으며, 인간 신체에 부여한 로댕의 표현력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지옥의 문》은 파리 로댕미술관을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 도쿄 국립 서양 미술관,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스탠퍼드대학교, 시즈오카 현립미술관 로댕관, 서울 로댕갤러리 등 전 세계 7곳에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옥의 문 [地獄─門] (두산백과)
지옥의 문을 먼저 만들고 거기서 독립한 작품들이 생각하는 사람과 세망령이다.
작품의 상단부에 생각하는 사람과 세망령을 볼 수 있다.
지옥의 문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내가 지옥의 문 바로 앞에 서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런 기분을 표현한 작품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주변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고뇌하고, 괴로워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지옥의 문 꼭대기에 있던 세 망령 (The three shades) 조각상이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데 저 너머에 에펠탑도 살짝 보인다.
세 망령 (The three shades) 옆에는 로뎅의 또 다른 걸작, 칼레의 시민들 (The Burghers of Calais)가 있다. 백년전쟁 당시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함락시킨 후 6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죽으러 나온다면 나머지 시민들을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이에 자원을 한 6명의 시민이 나와 죽으로 가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야외 작품들 구경을 마치고 이제 로뎅 미술관 건물로 향한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너무나 깔끔하고 아름답다.
자, 이제 로뎅 미술관으로 들어가 보자.
눈길을 끄는 소녀상, 사진을 찍고 있는데 소녀상 뒤에서 갑자기 나타는 둘째 녀석이 피식 웃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고, 대리석으로 조각한 "The Kiss" 작품이 눈길을 끈다.
2층에서 바라본 로뎅 박물관 정원의 모습이다. 정말 아름답다.
이제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박물관으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