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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았던 감각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by 이열

이열은 밤마다 물류센터로 간다. 늘 그렇다. 트럭에서 상자를 내리고,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고, 다시 다른 트럭에 상자를 싣는다. 간단한 일이고, 그가 잘 아는 일이다. 그의 팔이 익숙하게 움직인다. 허리가 때때로 결리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 정도는 다들 겪는 일이다.


센터의 공기는 차갑다. 컨베이어 벨트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상자들은 끝없이 밀려온다. “계속해야 해.” 그는 중얼거린다. 마치 자신을 달래듯이.

동료들이 가끔 농담을 던진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지만, 금세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일은 쉼 없이 돌아간다. 끝없는 반복이다.


하루는 벨트가 갑자기 멈췄다. 상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열은 잠시 손을 거두고 벨트를 바라보았다. 기계는 굉음 대신 정적을 남겼다. 정적의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다.

“뭐야, 왜 멈췄지?” 동료가 말했다.

“글쎄, 금방 고치겠지.” 다른 동료가 대꾸했다.


이열은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벨트가 멈추니 그도 멈췄다. 그는 발밑에 놓인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들어 올릴 이유가 사라졌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상자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상자가 움직이기 위해 벨트가 필요한 것처럼, 그의 손도 벨트가 움직여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생각은 오래 남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전처럼 일했고, 똑같이 상자를 옮겼지만 그날 이후로 작은 균열이 생겼다.

이열은 자신이 인생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예를 들어, 그는 매일 편의점에 들러 늘 참치김밥을 주문했다. 종종 ‘다른 걸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항상 참치김밥을 들고 나왔다.

어느 날엔 평소와 다른 길로 걸어가 보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발걸음을 잡아챈 듯이.

‘그냥, 익숙한 게 좋은 거야.’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믿지 못했다.


이열은 쉬는 날 집에서 오래된 공책을 발견했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적었던 기록들을 넘겨보았다. 매일의 작업량, 상자의 개수, 소요된 시간이 적혀 있었다.

“... 상자 1,204개. 작업 시간 8시간.”

다음 페이지도, 그다음 페이지도 같았다.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매일이 같았다. 매일의 기록이 너무 정확해서, 이열은 오히려 그것을 의심했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모든 날들이 하나로 뭉쳐 있었다. 그저 '상자'와 '작업'으로만 이루어진 흐릿한 기억이었다.


그날 밤, 이열은 꿈을 꿨다. 그는 거대한 공장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기계와 전선이 얽혀 있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화면에 숫자가 점멸했다.

“작업 효율: 98.7%, 상자 이동: 1,204개”

너무나 익숙한 수치였다. 화면 속의 숫자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화면을 바라봤다. 스크린의 불빛이 강렬하게 그를 비추었다.

“이게 무언가요?” 그는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꿈에서 깬 그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식은땀에 젖은 몸이 차가웠다. 그는 어두운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머릿속은 밝아졌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선택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한 행동은 모두 정해져 있었다.’

이열은 자신의 하루를 떠올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방식으로 상자를 들고.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했다. 빈틈없이 규칙적이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낯설었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만져 보았다. 미지근한 감각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프로그램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스스로의 선택이라 믿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미리 정해진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날 밤, 이열은 다시 물류센터로 향했다. 그는 늘 걷는 길을 걸었고, 항상 입는 작업복을 걸쳤다. 벨트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상자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는 상자를 들고 트럭에 실었다. 움직임은 여전히 같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무언가는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움직인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설계된 삶이라도, 내가 느끼는 건 나의 것이다.’

그는 손에 들린 상자의 무게를 느꼈다. 늘 같았던 감각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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