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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건 Mar 21. 2024

<독일, 이스라엘을 이야기하다>

독일 양심의 상징이 되어버린 홀로코스트

메론 멘델

번역되지 않은 책, 번역되지 않는 사회 2

Meron Mendel, <Über Israel reden: eine deutsche Debatte>


베를린의 역사적 중심부인 브란덴부르크 문의 정면에서 에베르 길(Eberstraße)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높이가 다른 2,711개의 석판이 세워져 있는 광장이 나타난다.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광장이 아니지만, 공간의 가장 바깥에서 무심히 주변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앉을 수 있는 돌의자가 줄줄이 있는 한적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견학 온 아이들이 가장 바깥 부분에 있는 석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이곳을 더욱 심상한 곳으로 만든다.


하지만 중심부로 갈수록 느낌이 달라진다. 계속해서 지대가 낮아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 되면 석판은 내 키를 넘어선다. 나는 불현듯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무덤의 비석 사이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학살은 죽음에서 삶과 이름을 빼앗아 무수히 많은 죽음 사이에 가두어 버린다. 자신의 죽음을 살지 못하고 학살된 사람들.


독일인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2005년에 완공되었다. 19,000m²의 넓은 대지에 조성된 이 기념 공원은 베를린의 주요 관광코스 중 하나여서 완공 첫해에 방문한 사람만 350만 명에 달했다. 이곳을 만들기 위해 독일 정부가 사용한 세금은 약 450억 원에 달했고, 독일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완공식이 진행되었다.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어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전쟁 범죄 관련 기념물은 당연히도 고통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념물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으면 과거는 사라지고 기념물을 만들게 된 배경이나, 조형물의 상징성, 누가 그것을 결정했는지가 나의 기억을 침투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보며 과거의 고통이 아닌 독일이 보여주는 현재의 양심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반유대주의, 나치 지지, 홀로코스트 부정 등은 독일에서 도덕적 금기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범법 행위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분노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독일은 모범적인 역사 인식을 가진 국가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반성이나, 반유대주의 척결을 넘어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독일의 주류 사회를 볼 때면 당혹스러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과거 자신들에 의해 고통을 당했던 유대인을 기억하는 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일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기념비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참고: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98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687


교육학자이자 역사가인 메론 멘델은 독일 사회가 이스라엘 지지를 자신의 도덕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도구화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 멘델의 저서 <독일, 이스라엘을 이야기하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 사회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를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학창 시절 아직 이스라엘에 살던 저자는 두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을 기대하며 교류 활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저자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점점 강경해졌으며, 이스라엘에서 두 민족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촉구하던 사람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저자는 결국 독일행을 택했다.


 멘델은 독일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주장한다. 논의가 누구 한쪽의 편을 들도록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모든 주장에 반유대주의라는 혐의를 씌우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독일이 이런 입장을 갖게 된 역사적 상황을 추적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당시 서독)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자신의 과거 잘못을 축소하는데 이용했다. 독일은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비용을 지불했다. 독일 정부는 나치 범죄자는 전체 독일인 중 일부였고 대부분은 상황을 잘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도의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 후 독일 정부는 중동 국가들의 눈치를 보며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변했다. 서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서독의 현실이 있었고, 부모 세대에 등을 돌린 68혁명이 있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처음에는 좌파의 입장이었지만, 점차 우파의 입장이 되었다. 그사이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보수 언론이 등장했다.


2008년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총리 최초로 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역사적 책임 때문에 이스라엘의 안보는 협상 불가능한 독일의 국가이성이라고 발언했다. 국가이성은 타협 불가능한 국가의 상위 원칙을 뜻한다. 그후 국가이성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무조건적 지지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역사를 추적하는 것과 동시에 독일 내 친 이스라엘 입장과 친 팔레스타인 입장이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모든 목소리에 반유대주의 혐의를 씌워 금지하고 있다. 멘델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팔레스타인인의 목소리에 반유대주의가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오랫동안 난민이 된 상황을 생각했을 때 이들의 반유대주의를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한 반유대주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독일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르게 여전히 독일 내에 남아 있는 반유대주의나 홀로코스트 허구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며 독일의 과거 범죄와 이것을 비교하는 독일인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비교는 자신의 과거를 더 잘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축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런 비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홀로코스트 또한 비교와 연결을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하이파(Haifa)의 대학에서 역사학과 학생으로 수업을 듣던 첫 학기를 기억한다. 1999년이었다. 홀로코스트 역사를 다룬 기초 수업은 ‚암흑의 핵심‘을 읽으며 시작되었다. 1889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서 조셉 콘래드는 벨기에 왕실이 콩고에서 자행한 식민지 착취를 강렬하게 묘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 지역에서 자행된 폭력은 1947년에야 유엔에 의해 민족 학살로 규정되었다. 학살, 기아, 질병, 물자 공급 부족으로 선주민의 약 절반가량이 죽었다. 대략 1,000만 명이었다.

우리는 역사 기초수업에서 현재의 나미비아에 있었던 독일의 식민지 정부가 첫 번째 집단수용소를 만들었다는 것을 배웠고, 서남아프리카의 헤레로인에게 ‚노동을 통한 절멸‘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행했음을 알게 되었다. 헤레로인은 철도를 건설하는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이 모든 사실이 20년도 더 전부터 잘 알려졌으며, 역사학과 첫 학기 수업에 다뤄질 정도의 기초 사실이 되었다. 홀로코스트와 식민지 범죄의 비교가 나와 내 학우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독일에서는 이런 비교를 일종의 터부라고 과장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메론 멘델(Meron Mendel)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독일에서 역사학과 교육학을 공부한 그는 2010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안네프랑크교육센터(Bildungsstätte Anne Frank)“의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안네프랑크교육센터는 홀로코스트 경험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이나 폭력에 관한 청소년 교육 기관이다. 그는 또한 2021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응용과학대학(Frankfurt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에서 „국제사회산업“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멘델은 독일 언론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 독일, 이스라엘을 이야기하다>는 2023년 독일 실용교양서적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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