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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May 21. 2021

LVMH, 거대 명품 브랜드 제국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루이뷔통, 모엣 샹동, 헤네시, 돔 페리뇽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디자인과 광고를 배경으로 눈을 유혹하는 브랜드 들이다. 이런 제품들을 쉽게 접하는 공항에서 보고 구입해서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비용을 생각해보면 망설여지는 제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런 제품들은 명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불한 비용만큼이나 제품력으로 소비자들에게 보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몇십 년 혹은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제품들이 한 그룹에 속해있다는 것이 상당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품이라고 한다면 모두 독자적인 회사로서 탄생하고 성장했을 텐데 현재는 한 거대 기업의 자회사로서 운영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LVMH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Ⅰ. LVMH의 탄생


LVMH는 프랑스의 세계 최대의 명품기업으로 이름은 LV는 루비뷔통 "L"ouis "V"uitton의 앞글자이며 M은 모엣 샹동 "M"oët & Chandon의 앞글자인 M과 H는 헤네시 "H"ennessy의 약자를 합친 것이다. LVMH라고 해서 루이뷔통과 모엣 샹동 그리고 헤네시 브랜드만 보유한 것은 아니며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명품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합병은 1987년에 루이뷔통 패션 하우스와 모엣 헤네시 사의 합병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현재 회사의 최대 주주는 루이비통이 아닌 크리스챤 디올이다. 이 지배구조를 보면 LVMH의 최대 주주는 Financiere Jean Goujon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데 Financiere Jean Goujon의 100%를 크리스챤 디올이 가지고 있고 크리스챤 디올의 69.96%를 그룹 아르노가 가지고 있고 그룹 아르노는 아르노 가문이 가지고 있는 지배구조이다.

<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 (출처 : 구글 이미지)

결국 LVMH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은 아르노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라고 생각하면 된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1949년 생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기업가로 루이뷔통, 디오르, 펜디를 비롯한 50여 개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품 업체인 LVMH 그룹의 창업자로 유명하다.


이 분 집에 가면 정말 엄청난 명품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다. 참고로 베르나르 아르노는 2012년 순자산 410억 달러로 포브스에서 세계 4번째 유럽 최고의 부자로 선정이 되었다고 하니 명품으로 부자가 되신 분은 맞는 것 같다. 아르노의 출생과 생애를 살짝 살펴보면 엔지니어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그랑제꼴 우리나라의 대학에 해당되는 수준의 학업을 마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입사한다.


힘든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고 재벌 2세였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입사 5년 만에 4천만 프랑에 건설사업부를 매각하고 부동산 사업으로 집중해서 성과를 낸다. 이후에는 아버지 후임으로 대표가 되어서 미국 진출에 관심을 쏟는다.


미국에서 플로리다에서 건설업을 해서 사업을 일구고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현재 LVMH의 최대 지주인 크리스챤 디올의 모기업 부삭 그룹을 인수한다. 이후 부삭 그룹을 인수하고 미국식 경영 기업을 도입해 대기업의 주도하게 복수의 브랜드가 합쳐져서 그룹으로 운영되는 경영을 펼친다. 이후 그는 루이비통을 인수하고 나아가 모엣 샹동까지 인수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LVMH라는 명품 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아르노의 미국식 경영이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와 합쳐지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LVMH가 가진 브랜드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Ⅱ. LVMH의 브랜드


LVMH는 약 7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업 구조는 시계&보석, 주류, 향수&화장품, 유통, 패션&가죽으로 구분되어 이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패션 가죽 부분이다. 이 각각의 분야들의 브랜드 이름을 들으면 모두 다 유명해서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모르는 것이 없을 수 있지만 너무 많으니 대표적인 것들만 나열해 보도록 하자.


1. 루이뷔통(패션 및 가죽)

< 루이뷔통 로고 > (출처 : 구글 이미지)

루이 비통의 역사는 1800년대에 시작이 된다. 1821년 프랑스 안쉐라는 마을의 한 목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은 어렸을 때부터 목공기술을 익혔다. 루이비통은 어렸을 적부터 파리에 대한 동경심이 있어서 14살에 집을 나와 파리로 떠나게 된다. 땡전 한 푼 없었던 루이 비통은 4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2년이나 걸려서 16살이 되던 1837년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고 한다. 집념의 사나이다.


루이뷔통은 파리에 도착한 이후 가방 제작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마레샬 아래에서 수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곧 루이 비통의 섬세하고 특별한 기술은 유명해졌고 귀족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이를 발판으로 루이뷔통은 황후의 후원하에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건 포장 회사를 개업했다. 이것이 오늘날 루이 비통의 뿌리가 되는 회사이다.

< 루이뷔통의 최초로 만든 사각형 트렁크 > (출처 : 핀터레스트)

초기 생산한 제품은 트렁크였는데 당시의 트렁크는 현대에서 흔히 만들어지는 사각형이 아니었다. 볼록하게 생겨 차곡차곡 쌓기 힘든 모양새였는데 루이 비통이 평평한 트렁크를 만들어서 쌓기 편리한 구조로 제작했다. 모양뿐 아니라 기존의 나무 재질에서 루이비통만의 목공기술을 살려 특별 제작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라는 소재로 가벼운 형태로 만들었다. 이 트렁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를 발판으로 루이뷔통이라는 브랜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2. 로에베 (패션 및 가죽)

< 로베에 로고 > (출처 : 구글 이미지)

로에베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1872년 독일 출생의 엔리케 로에베 로에스베르그가 마드리에 정착하면서 가죽 상점을 열고 스페인 장인들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오늘날의 로에베를 탄생시켰다.

< 로에베의 해먹 백 이미지 > (출처 : 골디)

로에베 로고는 1970년대에 탄생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서로 얽힌 네 개의 L자 로고로 이루어져서 로에베의 변천사를 반영하고 있다. 로에베의 대표적인 인기 상품으로는 해먹 백이 있는데 가방 모양이 해먹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셀린느 (패션 및 가죽)


셀린느 (CELINE)는 프랑스의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1946년 설립된 브랜드이며, 아동용 신발 매장으로 시작된 브랜드이다. 이후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지금의 명품 브랜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셀린느의 유명 제품으로는 트리오페 백, 클래식 박스, 러기지 백이 있으며 이 중에서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러기지 백이라고 한다. 뭐 이 중에서 나오는 상품 중에 가지고 있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4. 쇼메 (보석 및 시계)

쇼메는 프랑스의 보석 브랜드로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해주어서 파리에서 작은 보석상에 불과했으나 후에 나폴레옹의 왕관을 제작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상류사회 사이에서 유명해져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 쇼메 제품 이미지 > (출처 : 쇼메 홈페이지)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썰이 있는데 그중에서 한 가지는 이렇다. 쇼메 상점 앞에 어느 날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한 청년 장교가 쓰러져 있었다. 이를 발견한 쇼메의 창립자 니토는 상점 안으로 그를 인도해 따뜻한 수프를 대접하며 몸을 추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니토 덕분에 기운을 차린 장교는 훗날 꼭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청년의 이름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 였다고 한다. 이후 나폴레옹이 왕이 되고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함을 느낀다. 원래 쇼메는 왕비의 전속 보석상일 정도로 실력이 있었고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귀족에게 납품을 할 정도로 실력파 보석상이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작은 보석상으로 쇠퇴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의 전속 보석상이 되어 프랑스 제국의 화려함과 힘을 자랑할 만한 제품을 선보이며 왕궁 브랜드로 부상했다. 이처럼 쇼메는 프랑스 왕국에 납품하던 보석 브랜드로서 이미 명품으로서의 이름과 입지가 상당했다고 생각된다. 이후에는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LVMH가 1999년 사들이게 된다.


5. 모엣 샹동 (주류)


모엣 샹동은 샴페인 브랜드 중의 하나로서 샴페인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이다. 그만큼 판매량도 가장 많다. 모엣 샹동은 1743년에 클로드 모엣이라는 와인 제조 및 판매상인이 설립했다. 루이 15세 때 스파클링 와인의 수요가 귀족들을 중심으로 늘었는데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공략해서 성장했다.


모엣 샹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처음 설립한 클로드 모엣이라는 사람과 이후 모엣의 사위인 피에르 가브리엘 샹동 드 브리알리스가 회사에 합류한 이후 회사의 이름이 모엣 샹동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프랑스식 이름인데 이름도 참 길고 복잡하기는 한데 결국 두 개의 이름이 합쳐진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6. 돔 페리뇽 (주류)


돔 페리뇽은 프랑스의 샴페인 브랜드이자 제품이다. 세계 최대의 LVMH그룹의 모엣 샹동의 고급 샴페인 브랜드로 자리매김되어 있으며 빈티지 샴페인을 선보이고 있다. 돔 페리뇽이라는 이름은 실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는 와인 제조 과정 중 2차 발효과정에서 내부의 기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안쪽에서부터 병이 깨지거나 코르크 마개가 저절로 열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수도승 돔 페리뇽이었다.

< 돔페리뇽 수도승 이미지 > (출처 : 구글 이미지)

돔 페리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해 효모가 과대하게 증식되기 때문에 기포가 급격하게 발생되어 병이 깨지는 것을 알아내고 두껍고 튼튼한 와인병과 마개가 저절로 열리지 않게끔 마개에 철사를 두르는 방법 등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돔 페리뇽이 와인을 연구하고 제조했다고 알려진 곳이 모엣 샹동이 소유한 한 와이너리였기 때문에 모엣 샹동의 샴페인 라인업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7. 샤토 디켐 (주류)


샤토 디켐은 디저트 와인의 대명사이다. 샤토 디켐은 귀부와인의 일종인데 귀부라는 뜻은 귀부라는 말은 고귀한 썩음이라는 뜻이다. 귀부와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자. 와인을 만드는 데에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 귀부균이라고도 함)라고 하는 회색 곰팡이가 중심 역할을 한다. 이 곰팡이가 포도에 피게 되면 포도알 껍질의 왁스질을 파괴하고 미세한 구멍을 낸다. 더운 낮 동안 이 구멍으로 수분이 증발하여 포도알 내부의 과즙이 농축된다.

< 샤토 디켐 이미지 > (출처 : 미트랩)

귀부 균은 당분과 유기산을 일부 소모하지만, 그 이상으로 수분이 증발하므로 결과적으로 과즙의 성분은 평소의 몇 배로 농축되는 것이다. 이렇게 반건포도가 된 포도알을 수확하여 압착, 농축 과즙을 뽑아내 와인으로 양조하면 꿀처럼 달콤한 단 맛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귀부와인이며 디저트 와인이라고 불리며 샤토 디켐은 이 귀부와인의 대명사로 유명한 와인이다.  


이 외에도 펜대, 에밀리오 푸치, 겐조, 지방시, 태그 호이어, 불가리, 뵈브 클리코, 벨버디어 보드카, 크뤼그, 헤네시, 세포라 화장품과 유통업체에서의 DFS 면세점, 마이애미 크루즈 라인 서비스까지 LVMH의 사업 영역은 소비재의 명품 전 분야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Ⅲ. LVMH의 미래 성장성


지금까지 LVMH의 탄생과 보유한 브랜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간략히 요약하면 LVMH는 Louis Vuitton Moet Hennessy의 약자로서 70여 개의 최고급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의 기반을 둔 회사이다. 보유한 브랜드들은 모두 몇십 년 이상의 역사와 명성을 가진 브랜드로 대체되기가 쉽지 않은 가치를 자랑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제품들이다. 이런 브랜들이 한 기업 산하에 자리 잡게 됨으로써 LVMH는 세계적인 명품사업을 하는 업체 중에서도 가장 큰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LVMH가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는 명품 브랜드를 육성하기보다는 미국식 경영 방식을 가지고 와서 현재의 기업을 일구어 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르노는 M&A (Mergers & Acquisitions) 즉, 인수 합병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그것이 새로운 사업 경영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보인다.


덕분에 LVHM의 브랜드들은 서로 교류하면서 브랜드 간의 상호 조율이 가능해지게 되고 내부적으로도 자극을 주면서 동반 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현재 LVMH에는 유명한 브랜드들도 많고 각각의 브랜드들이 사랑받는 소비자 군도 제각각인만큼 각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나 경영진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LVMH는 중앙집권적인 조직에서 탈피, 자유롭고 유연한 조직 체계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각 브랜드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모기업은 규모를 앞세운 협상력을 발휘할 때만 나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본사의 역할은 각 디자이너와 경영진들이 전체 시스템 속에 조화를 이루도록 유도하는 것에 그칠 뿐이고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창의성에 방해를 줄 수 있다는 원칙 하에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에 LVMH라는 향후에도 모기업의 이름보다는 자회사 브랜드를 통해서 더 성장하고 그것을 결국은 전체의 성장을 견인해 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LVMH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깨닫게 된 점 중에서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수 합병이라는 경영 기술이 IT 분야에서만이 아닌, 명품 브랜드라는 섹터에서도 인수 합병을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LVMH를 좀 더 공부해 봐야겠다. 제품을 사서 쓰는 것은 좀 더 이후로 미뤄두어야겠다.



[ 글을 마치며 ]


LVMH라는 그룹에 대해서 신문 기사를 통해서 접한 적은 있는데 명품을 한데 모은 거대 명품 브랜드 기업이 탄생했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아르노라는 기업인이자 경영인지 프랑스의 목재 회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동산으로 시작해서 이루어낸 거대 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의 루이뷔통이나 모엣 샹동이나 쇼메나 LVMH가 가진 브랜드를 보면 아르노라는 사람이 만들거나 탄생시킨 브랜드는 없다. 모두 각각이 몇 백 년의 시간 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탄생하고 발전해온 기업들이다. 그렇지만 이 기업들은 전문 경영인을 만나지 못해서 쇠퇴하거나 몰락하기도 했고 정체를 겪기도 했다.


LVMH의 CEO인 아르노도 이 현상을 보고 이를 개선시킬 방법을 고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르노도 처음부터 거대 자산가는 아니었다. 아르노는 1984년 파산위기에 몰린 크리스찬 디오르(Christian Dior)의 모기업인 부삭(Boussac)을 사들인 후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킨 후 향수 부문을 남기고 팔아서 큰 이익을 남겼다. 그리고 그 성공을 기반으로 1987년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루이뷔통(Louis Vuitton)을 인수, 합병하면서 LVMH 그룹의 시초를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 T 갤러리아 > (출처 : T갤러리아 홈페이지)

이후 지속적인 일류브랜드 M&A를 통해 기업가치를 적극적으로 변모시켜나간 것이 현재 LVMH 그룹의 역사이다. 그리고 LVMH는 단순히 명품 브랜드만 인수 합병한 것이 아니라 DFS라는 유통 업체도 인수를 했다. DFS는 세계의 주요 공항과 T 갤러리아 백화점을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14개국에서 만 명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DFS 사용자는 코로나 전까지 약 1억 6천만 명의 여행자가 매장을 방문할 정도로 트래픽도 있는 유통업체이다.

< DFS 면세점 이미지 > (출처 : DFS 홈페이지)

LVMH의 회장인 아르노는 제품력이 있고 브랜드 파워가 있는 세계 1위의 회사들을 영입하고 그 회사들은 산업 군으로 분류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판매가 가능한 채널까지도 영입함으로써 브랜드, 마케팅, 제조, 유통, 판매까지의 명품 브랜드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관리할 만한 능력을 가진 회사를 탄생시켰다.

한 명의 사람이 혁신적인 생각을 하고 그 안에서 탄생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LVMH와 아르노 회장의 사례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매우 인상적이었고 배우는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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